“교수 시절 연구했던 내용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생생하게 접하고 있습니다.”
김상현 공정거래위원회 경제분석과장은 올 2월 연세대에서 공정거래위원회로 ‘이직’했다. 2015년 도입된 정부 헤드헌팅 제도 덕분이다. 정부에 민간 전문가들을 영입하기 위한 이 제도는 중앙부처 개방형 직위만 해당됐지만 이후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과 중앙부처 4급 임기제까지 확대됐다.
김 과장은 2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년을 보장받은 현직 교수가 정부 개방형 직위, 특히 과장급으로 옮긴 사례는 내가 처음”이라며 “새로운 도전과 이론의 현실 적용을 위해 공직에 지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교수 재직 시절 정부와 기업 등 고루 자문을 맡고 공정위의 연구 과제를 수행했지만 그는 실제 사례가 절실했다. ‘실제 공정위 내부에서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커지던 차에 ‘헤드헌터’의 권유에 응했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김 과장은 “공정위가 독과점·담합 등을 판단할 때 필요한 세부적인 사실관계 검토나 이론적 근거 등을 총괄한다”고 맡은 업무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산업조직론을 전공한 경제학자로서 연구했던 내용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볼 수 있어 즐겁다”고 덧붙였다.
32년 경력의 공연 기획 전문가인 박민정 클래식부산 대표도 지난해 9월 정부 헤드헌팅을 통해 공직에 몸담게 됐다. 그는 “1992년 예술의전당에 입사해 1993년 서울 오페라극장(현 오페라하우스) 개관에 참여했는데, 이제 부산에서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총괄하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고 전했다.
이들은 올 9월 정부 헤드헌팅 도입 10주년을 앞두고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10년 동안 정부 헤드헌팅으로 공공 부문에 영입된 민간 인재는 현재 123명으로 과학기술·홍보, 환경·노동, 의료·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정부 헤드헌팅 1호 임용자로 주목받았던 이동규 전 기상청 수치모델링센터장은 서울대 기상학과 교수에서 직을 바꾼 후 현재 대기 상태로부터 앞으로의 상태를 예측하는 ‘한국형 수치 모델’을 개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정부 헤드헌팅 제도로 민간 전문가를 채용한 기관들의 만족도 역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지난해 인사혁신처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정부 헤드헌팅을 이용한 기관의 만족도는 96.9점, 입직자는 100점을 기록했다. 개별 부처 등이 자체적으로 민간 전문가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정성 우려가 적다는 장점도 있다. 제도를 주관하는 인사처에서 국가인재데이터베이스 등 양질의 후보군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 부문에 민간 전문가들로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인사처가 실제 추진한 헤드헌팅 중 최종 임용까지 성사되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고 최종 합격 후보자가 근무 조건 등을 이유로 임용을 포기하는 사례 또한 다수다. 인사처 인재정보담당관실에서 헤드헌팅을 전담하는 직원 수도 2명뿐이다. 한 건의 임용을 위해 최소한 40~50명의 인재를 살펴보고 숱하게 거절당하면서 망설이는 후보들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한 숫자다.
그럼에도 헤드헌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인사처는 민간 전문가가 필요한 직위의 연봉 상한 기준을 지난해 폐지했다. 공무원 휴가 일수가 재직 기간 기준으로 산정되는 까닭에 공직 입직 첫해 연가가 최대 8일에 불과했던 문제도 뜯어고쳤다. 덕분에 올 2월에는 이전까지 채용이 어려웠던 법무부 교정시설 의료과장 직위에 15년 경력의 감염병 예방, 건강관리 전문가를 영입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공직 문화를 어려워하는 임용자들을 위한 사후 관리도 이어진다. 박용수 인사처 차장은 “다이렉트 소싱(직접 채용)이 채용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만큼 정부 역시 인재들의 지원을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인재 영입에 나서야 한다”고 제도의 의미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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