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에 사라질 직업은 무엇일까? AI시대에 문학과 글쓰기는 어떻게 바뀔까?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 요즘입니다. ‘인공지능 시대, 작가로 살아온 나는 어떻게 다르게 써야 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을 맡은 ‘허(Her)’라는 영화를 봤을 때의 충격과 슬픔이 떠올랐습니다. 인공지능 여성과 깊은 사랑에 빠져 실제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는 주인공이 너무 안쓰럽기도 하면서 저런 현상이 결코 멀지 않은 미래에 실제로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일찍 그런 현상이 일어났네요. 이제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챗GPT에 실제로 의지하고, 심지어 친구나 연인이나 가족보다 더 친근감을 느끼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인공지능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이 있다고 생각했고, 내 안에서 용솟음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에 이리저리 인터넷을 검색하지 않고, 일단 나의 마음 속에서 길을 찾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인터넷 시대와 최근의 AI 시대의 결정적인 차이점 중 하나는 일대일 맞춤 서비스에 가까운 지식 생산이 가능해졌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에게 주제를 입력해 그 결과값을 도출한다면 그것은 나만의 글쓰기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면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은 사라져 버리니까요. 미국의 한 글쓰기 강사는 ‘AI가 써주는 대로 그대로 숙제를 제출하는 학생들’의 글쓰기 방식에 충격을 받고 강사 일을 그만두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인공지능의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의 바다처럼 인류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많은 일자리가 인공지능으로 인해 없어지고 있고,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 시스템은 엄청난 물과 전기를 소모하는 환경파괴적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에 박수를 칠 수는 없습니다.
저의 잠정적인 결론은 인공지능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의 자리는 항상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토록 매력적인 챗GPT를 거의 활용하지 않는 이유도 사실은 영혼의 나침반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하고 어설프더라도 아직은 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직은 챗GPT보다는 진짜 사람을 만나서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좋아요. 조금 더 불편하더라도 조금 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저는 제 안에 ‘우리, 온기가 있는 인간들의 소통’이 해낼 수 있는 마음의 자리를 남겨두고 싶습니다. 우리들, 인간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요약된 깔끔한 세계, 살균된 정보의 세계’가 아니라 ‘길고 긴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인간의 무한한 자유’를 선택하지 않을까요. 저는 아직 ‘올마이티한 인공지능’보다는 매순간 변화하는 무한한 감수성을 지닌 존재, 무의식과 육체와 꿈상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의 자유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