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업계에서는 ‘성과가 좋아도, 나빠도 팀은 깨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직이 잦은 편이다. 이런 여의도 바닥에서 곽봉석(사진) 대표는 20년 넘게 DB증권(016610)에서 근무하며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올랐다. 그는 DB증권에 재직하는 동안 대표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맡은 바 일을 하다 보니 대표가 됐다는 겸손한 얘기다.
곽 대표는 28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단기적인 이익, 처우나 이해관계를 좇아 회사를 옮기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며 “자신이 100% 만족하는 직장은 있을 수 없고 얼마나 만족하느냐의 차이인데 어떤 때는 50% 만족했지만 내가 있는 위치에서 해결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던 곽 대표의 노력은 DB증권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20년 가까이 부동산 금융을 담당한 곽 대표는 이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부동산 호황기마다 경쟁사들의 공격적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익스포저 확대에도 DB증권은 감내할 수 있는 위험이 어디까지인가를 항상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그 결과 시장 악화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가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있던 지난해에는 경쟁사보다 빠르게 실적 개선까지 이뤄냈다. 곽 대표는 20년간 숱하게 겪었던 PF 시장의 교훈이라고 설명했다.
곽 대표는 증권맨 31년 경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로 무엇보다 삼호의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을 꼽았다. 솔직한 소통, 상호 간 신뢰를 중시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1986년 대림그룹에 주식 액면 병합 방식으로 편입돼 ‘e-편한세상’ 브랜드를 사용하던 중견 건설사인 삼호는 2009년 1월 29일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삼호는 직전 3년간 연평균 17% 이상의 매출 성장을 보일 정도로 실적이 우수했다. 불과 3분기까지만 해도 민간 건축 분야와 토목공사에서 총 3941억 원을 수주해 1조 8749억 원의 수주 잔액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방 분양 사업 결과 평균 분양률이 65.5%에 머무르는 부진한 성과를 냈고 이로 인해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됐다.
당시 동부증권(현 DB증권)은 삼호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판매를 주관하고 있었다. 약 2000억 원 규모의 ABCP는 기관뿐만 아니라 1100억 원가량이 개인투자자에게 판매됐다. 당시 판매 금액은 동양종금이 680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현대증권 210억 원, 동부증권 101억 원, 한화증권 55억 원, 유진투자증권 40억 원, 굿모닝신한증권 10억 원 등이었다. 삼호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동부증권은 부실을 그대로 떠안을 위기에 처했다. ABCP 판매 주관을 담당하던 직원들은 모두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이때 곽 대표는 부실 채권 회수를 총괄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3년에 걸쳐 전액 회수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그는 신뢰와 소통을 강조했다. 곽 대표는 “긴밀한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신뢰를 쌓는 과정에서 손해가 최소화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제일 먼저 삼호에 시간을 줬을 때 워크아웃이 해결 가능한 문제인지를 봤다고 한다. 시공사 입장에서 해결이 가능하다고 하면 어떤 역할을 할지, 증권은 기다려 줄 수 있는지 등을 계속해서 따져가며 합의까지 이끌어냈다. 곽 대표는 “합의를 해도 트러블은 계속해서 발생하는데 시공사와 금융사가 서로 어떤 것을 추가로 부담할 수 있는지, 담보를 더 제공하면 이자를 낮출 수 있는지 등을 맞춰갔다”고 했다. 이런 소통 과정에서 삼호 측은 3년을 기다려주면 원금을 갚을 수 있다는 뜻을 전해왔다. 곽 대표는 “제일 먼저 개인들의 부담을 덜어줬고 협조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협조하면서 삼호 워크아웃 문제를 해결했다”며 “돌이켜보면 결국 문제 해결의 핵심은 신뢰와 소통”이라고 덧붙였다.
곽 대표는 이 같은 가치관을 경영에도 적용하고 있다. 특히 직원들과의 신뢰를 위해 더욱 적극적이고 진솔하게 소통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고 강조했다. 통상 증권사의 투자은행(IB) 분야 직원은 계약직인 경우가 많지만 DB증권은 모두 정규직이라는 점이 다르다. 곽 대표는 “소통 과정이 구체적이어야 하고 보다 자세한 목표치를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며 “회사가 적극적으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직원들도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소통의 효과는 확실하다. 곽 대표는 “예전이었으면 어떤 딜을 할 때 회사랑 호흡하지 않고 직원 스스로 리스크를 해소할 방안 등을 마련해 승인 과정을 밟았다”면서 “그러다 보니 직원이 영업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는데 지금은 직원이 딜소싱을 하는 과정에서 회사가 지원 가능한지 여부를 빠르게 판단해 함께 호흡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점들을 토대로 IB 분야 성과도 쌓이고 있다. 곽 대표는 “DB증권이라고 하면 신뢰와 소통을 바탕으로 한 내실 있는 회사로 기억되고 싶다”며 “회사의 성장에도 더욱 속도를 내 대형사로 갈 수 있는 기틀을 만든 사람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곽 대표는 매일 만 보 걷기를 한 지 5년이 됐다. 술을 먹더라도 비가 오더라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걷기를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다. 탐욕은 스트레스에서 오는데 걷다 보면 그 스트레스가 사라진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우발적인 의사 결정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곽 대표는 “걸어보니 걷는 것만큼 건강에 좋은 게 없고 동시에 머리가 맑아지는 게 있다”며 “무념무상 상태로 걷다 보면 일종의 명상 효과가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투자 원칙을 지켰는지 등을 되돌아본다는 설명이다. 특히 그는 “자기 것을 많이 가져가려다 보면 전체를 잃는 경우를 많이 봤다”면서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DB증권은 최근 웅진그룹의 국내 1위 상조 업체 프리드라이프 인수 딜에서 6000억 원 규모의 인수금융과 1000억 원어치 영구채(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참여했다. 중소형사인 DB증권이 딜을 주관한 배경도 주목받고 있다. 시장에서는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웅진이 1조 원에 가까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있었다.
곽 대표는 “외부에서 DB증권이 이런 큰 딜을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듯, 웅진도 이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규모가 작고 자금 조달이 어려울 수 있다는 DB증권의 한계는 어찌 보면 말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다”며 “최대한 빨리 인정하고 웅진에 가능한 플랜을 솔직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DB증권은 우리금융그룹과 함께 자금을 조달하기로 결정했다. 곽 대표가 웅진 오너를 직접 만나 확고한 사업 목표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고 즉시 인수금융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다. 곽 대표는 “프리드라이프의 경영 비전과 가진 자산을 전부 담보로 내놓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듣고 인수금융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공동 주선이 가능했다”면서 “웅진 측에서도 DB증권이 솔직하게 소통하고 빠른 속도로 일을 추진하는 것을 보면서 작지만 함께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본 것 같다”고 밝혔다.
물론 DB증권의 IB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도 이번 딜을 따내는 데 빛을 발했다. DB증권은 지난해 1월 IB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금융본부를 3개 본부 체제로 확대함과 동시에 우수 인력들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주식자본시장(ECM)과 부채자본시장(DCM)을 중심으로 중견기업들과 소통을 확대하면서 이들의 필요에 최적화된 회사채 발행, 유상증자 등 다양한 자금 조달 방안을 제시해왔다. 동시에 대체금융팀·부실채권(NPL)금융팀 등을 신설해 사업 영역도 확대했다.
He is…
△1969년생 △고려대 법학 △1994년 대한투자신탁(현 하나증권) △2005년 DB증권 입사 △2011년 프로젝트금융본부장 △2019년 PF사업부 부사장 △2022년 PF사업부 겸 IB사업부 총괄부사장 △2022년 대표이사 내정 △2023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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