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이산화탄소 포집·활용(CCU) 실증 시설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향후 연간 500톤 규모로 키워 글로벌 상용화 경쟁을 주도하는 게 목표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6월 수상자로 선정된 오형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청정에너지연구센터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실증 시설을 통해 온실가스 저감과 산업 원료 생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CCU 기술을 선점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오 센터장 연구팀은 독자 기술 확보와 함께 LG화학에 기술을 이전해 상용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CCU는 대기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화학반응을 통해 에틸렌·에탄올·일산화탄소·합성가스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고부가가치 화합물로 바꾸는 기술이다. 기후·환경 분야에서는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이는 동시에 자원도 생산할 수 있는 ‘일석이조’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전 세계 CCU 시장 규모는 2040년 800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과기정통부도 올 4월 ‘CCU 이니셔티브’를 출범하고 CCU 기술 산업 활성화를 위한 추진 전략을 발표하는 등 글로벌 경쟁 대비에 나섰다.
오 센터장 연구팀은 특히 친환경 기술인 ‘전기화학적 CCU(eCCU)’를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산화탄소를 다른 물질로 바꾸는 화학반응을 일으키려면 외부에서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는데 이 에너지원을 기존 화력발전으로 충당하면 또 다른 이산화탄소 배출이 이뤄진다는 딜레마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원을 활용하는 방식이 eCCU다.
eCCU는 다만 효율 문제가 남아 있다. 화력 대신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면 에너지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고 이에 생산물의 원가도 높아져 상용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센터장은 “기존 석유화학 공정으로 원료를 생산하는 것보다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업들의 기술 투자와 상용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을 확보해 이산화탄소의 실질적 저감은 물론 석유화학 산업을 대체할 수 있는 원료 생산공정을 만들겠다”며 연구 계기를 설명했다.
오 센터장 연구팀은 구체적으로 화학반응에 쓰이는 촉매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원천 기술을 개발한 연구 성과를 지난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와 영국 왕립화학회지 ‘에너지 및 환경과학’에 잇달아 발표했다. 촉매는 화학반응을 촉진해주는 물질이다. 촉매 효율을 높이면 같은 에너지 투입으로도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 수 있어 CCU의 경제성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현재 CCU 반응 시 촉매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으로는 원치 않게 만들어지는 부산물인 탄산염이 꼽힌다. 오 센터장은 “촉매 표면에서 화학반응이 진행되면서 점점 염기 농도가 높아지고 그 결과 이산화탄소가 염기와 반응해 탄산염으로 바뀌는 문제가 있다”며 “탄산염은 더 이상 다른 물질로 바뀌는 화학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부산물이 쌓일수록 촉매의 효율도 떨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연구팀이 개발한 신기술은 산과 염기 농도, 즉 수소이온농도 지수(pH)를 조절해 탄산염의 발생 원인을 차단한다. ㎚(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로 정교하게 전극을 만들고 이를 통해 pH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pH를 얼마나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지표로 ‘전류밀도’가 있는데 연구팀은 이를 상용화 수준인 1A/㎠(제곱센티미터당 암페어)로 끌어올렸다. 기존 기술로는 0.01~0.5A/㎠ 정도였다.
연구팀은 또 화학반응 중 산·염기 농도를 포함한 촉매의 상태 변화와 생성물 분포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인 ‘가속기 기반 엑스선 흡수분광법(XAS)’ 등도 개발해 CCU 화학반응의 조절 능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오 센터장은 “경제성을 높이기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며 동시에 정부·기업과 함께 실증 과제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실제로 충남 보령시 중부발전 내 하루 200㎏의 일산화탄소를 생산할 수 있는 eCCU 실증 시설을 구축 중이다.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최대 수준이라는 게 오 센터장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나아가 과기정통부가 추진 중인 대형사업 ‘CCU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연간 500톤으로 실증 규모를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상용화 시점은 아직 불명확하다
오 센터장은 구체적 목표에 앞서 정부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CCU는 신기술이라서 아직 기업들의 투자가 활발하지 않다”며 “중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이 공격적 투자를 시작한 만큼 정부도 기업 투자를 유인하고 기술 사업화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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