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첫 메시지로 ‘철통같은 동맹’을 외치면서도 이례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경계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시작부터 미중 ‘균형 외교’를 견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백악관은 3일(현지 시간) 당국자 명의의 특파원단 서한을 통해 “한미 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백악관이 한국 대선에 대한 입장에서 제3국인 중국을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 새 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를 차단하고 이 대통령의 균형 외교에도 견제구를 날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도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대화)에서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중국과는 경제적 협력을 심화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안미경중’ 흐름을 경계했다. 일각에서는 백악관의 이날 입장을 두고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했다’는 내용과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을 한 문장에 언급함으로써 중국이 대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미 국무부는 보다 정제된 입장을 내놓았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이날 “이 대통령의 선출을 축하한다”며 “한미 양국은 상호방위조약, 공동의 가치, 굳건한 경제적 유대를 바탕으로 동맹에 대한 철통같은 약속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역내 안보를 강화하고 경제적 회복력을 향상하며 우리가 공유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한미일 3자 협력을 계속해서 심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록 외교적 수사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경제적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동맹 현대화’는 결국 중국과의 경제적 디커플링(탈동조화)에 동참하라는 의미로 읽힌다.
미국 내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한국의 새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한목소리로 경고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이날 워싱턴타임스재단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산업, 기술, 경제적 활력이 기본적으로 미국이 달성하고자 하는 바와 긴밀히 엮이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한국이 이런 문제에서 (미중 사이에)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점을 한국의 새 정부가 이해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6자회담 차석대표도 이재명 정부가 중국을 최대 교역 상대로 유지하면서 미국을 안보 동맹으로 두는 것과 관련해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한국의 새 대통령:프라이팬에서 불 속으로(Frying Pan to Fire, 설상가상이라는 의미)’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가장 힘든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두 차례 탄핵 위기 때 중국 경제성장 붐(2004년)과 한국 반도체 수출 붐(2017년)이 한국 경제에 도움을 줬지만 지금은 그런 요인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 2개의 전쟁, 미국의 관세, 중국의 수출통제, 북러 밀착 등 대외 환경을 언급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한국의 경제 회복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에도 타격이 될 철강·알루미늄 및 파생상품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50%로 인상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새 관세율은 4일 0시(미국 동부 시각, 한국 시각 4일 오후 1시)를 기해 발효됐다. 미국과 원칙적인 무역 합의를 이룬 영국에 대해서는 25% 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영국이 미영 경제번영합의(EPD)를 준수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관세율을 50%로 올릴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백악관은 또 무역 협상을 진행 중인 모든 국가에 4일까지 최상의 제안을 제시하라는 서한을 보냈다고 3일 공식 확인했다. 상호관세 유예 기한인 7월 8일 전에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속도를 내려는 것으로 풀이되는데, 우리 정부도 서한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새 정부가 어떤 제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한편 대미 관세 협상에서 우리 정부와 비슷한 입장인 유럽연합(EU) 지도부는 이날 양자 협력을 심화하자며 조만간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X(옛 트위터)를 통해 이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유럽과 대한민국 간 굳건한 유대를 더욱 심화시켜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파트너십은 무역에서 혁신·국방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가치와 관심사를 기반으로 구축돼 있다”며 “함께 규칙에 기반한 국제 규범과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 그리고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수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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