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투표소 앞에서 느껴진 시선은 따가웠다. 현장을 사진에 담기 위해 들어 올린 카메라를 슬그머니 내릴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선거 당일 투표 사무원들의 눈에는 경계심과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그만큼 투표 과정을 둘러싼 시비가 많았다는 방증이다.
실제 이번 대선에서는 투표소 안을 유튜브로 생중계하려는 이들이 곳곳에서 등장했다. 울산에서는 촬영을 시도한 여성이 퇴거 조치됐다. 중년 남성이 동대문구 한 투표소에서 내부를 촬영하고 다른 유권자들에게 고성까지 지르다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제주 서귀포시에서는 “선거 사무를 제대로 보지 않는다”며 사무원을 폭행한 6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혼란이 적지 않았다. 당일 오전 6시부터 하루 동안 경찰에 접수된 투표소 관련 신고는 800건을 넘겼다. ‘투표 사무를 신뢰할 수 없다’거나 ‘부정선거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발생한 고성과 실랑이가 많았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특정 후보의 벽보를 훼손하거나 정당 로고에 침을 뱉는 장면은 수도 없이 포착됐다.
이런 현상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 지난 대선과 대비된다. 비상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같은 정치적 충격들이 남긴 여진은 깊었다. 이념·지역·세대 간 균열이 선거 국면에서 증오와 분노의 형태로 표출됐다. 민주주의 절차의 상징인 투표소마저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극단까지 치달은 한국 정치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사회 통합을 향한 시민 염원은 한결같았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말없이 줄을 선 부모들의 눈빛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 젊은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안정과 희망을 말하는 유권자들도 적잖았다. 21대 대통령 선거의 최종 투표율이 28년 만에 가장 높은 79.4%로 집계됐을 정도다.
이재명 대통령도 곧장 “함께 가자”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며 포용과 회복을 강조했다. 이런 메시지는 단순 선언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설득과 복원의 과정이어야 한다. 다름을 적으로 만들지 않고 설득이 가능한 사회를 다시 설계하는 작업이 출발점이다. 시민이 투표로 표현한 신호를 정치가 제대로 읽을 차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