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취업준비생 조 모(25) 씨는 주변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헤어졌다’는 소식을 연달아 전해들었다. 조 씨 주변에 남자친구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를 뽑았음을 안 뒤 미련 없이 결별했다는 친구가 벌써 2명이다. 회사원 원 모(30) 씨도 헤어진 남자친구와 '탄핵' 이야기를 하다가 크게 싸운 적이 있다고 말했다. 원 씨는 “탄핵을 당연히 해야 한다는 나와 달리 남자친구는 반대하는 쪽이었다"며 “정치 성향이 다른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7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및 대선을 계기로 2030 남녀의 양극화한 정치 성향이 재차 화두에 오르고 있다. 특히 이 후보가 ‘젓가락 발언’으로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였음에도 젊은 남성 유권자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자 더욱 젠더 갈등이 심화하는 분위기다.
앞서 방송 3사 대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64%가 이재명 대통령(58.1%)과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5.9%)에 투표한 반면 20대 남성 득표율은 총 25.6%(이재명 24%, 권영국 1.6%)에 그쳤다. ‘이대남’의 표심이 쏠린 곳은 이 후보(37.2%)로 20대 여성 지지율의 세 배 이상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30대 남성의 이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지지율도 30대 여성보다 20%포인트 이상 높았다. 청년층의 성별 투표 성향 차이는 2022년 20대 대선 출구조사 때보다 극명해졌다.
매우 다른 정치 성향이 수치화되어 나타난 뒤 서로에 대한 배척 움직임 또한 거세지고 있다. 이 씨는 “개인적으로 이 후보의 발언을 용납할 수 없는데, 예상보다 많은 남성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음을 안 뒤 충격이 컸다”면서 “기존 인간관계에서 대선을 계기로 심리적 거리감이 생긴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소개팅 앱 등에서도 탄핵·대선을 기점으로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교제할 수 없다’는 글이 다수 포착됐다.
지난해 8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 통합 실태 진단 보고서에서도 국민 10명 중 6명(58.2%)은 정치적 성향이 다를 경우 연애 및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상계엄·탄핵 등을 거치며 상대편을 악마화하는 ‘혐오의 정치’가 일상에 스며든 결과 정치 성향에 따라 사회적 교류 여부를 결정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정치색만으로 특정 성별·세대에 대한 낙인을 찍고 적대시하는 자세가 결국 ‘혐오’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회사원 강 모(30대) 씨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존중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며 대선 이후 정치의 정상화가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염원을 전했다.
이 교수 역시 “모두가 똑같은 가치관을 갖는 사회는 불가능하다. 같은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종도 하지 않는 태도는 더 큰 분열을 부를 뿐”이라며 “새 정부 출범과 발맞춰 정치권과 언론을 시작으로 모든 시민에게 관용의 자세가 필요한 때”라고 당부했다.
/장형임 기자 j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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