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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해고 쉽게 제도 바꾸고…소득 손실 보호망 구축해야"

[새 정부에 바란다] 김진영 고려대 노동대학원장

노란봉투법 시행되려면 노조 불법행위 막을 안전장치 필요

중대법 효과 제한적…고위험 직종 보상체계부터 마련 바람직

최저임금은 5년에 한번 결정…물가 연동 자동 조정도 대안

김진영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 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




김진영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 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


김진영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 대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유연성이 부족한 것”이라며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사회안전망 등 복지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정부 출범 하루 뒤인 이달 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캠퍼스 노동대학원장실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동 유연성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해고”라며 “해고는 당사자에게 단기적으로 큰 충격이 될 것이지만 해고에 따른 소득 손실 보전 등 보호망을 잘 갖춘다면 이직과 해고는 취업을 더 빠르게 하고 노동시장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했다.

김 원장은 노동 유연성과 사회안전망이 양 날개처럼 펼쳐져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역대 정부에서 노동 유연성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원인으로 ‘정책 만능주의’를 꼽았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나 정책 개입이 노동 유연성과 같은 시장의 순기능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학 교수인 그는 “정책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만들 수 있는데 이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정책 투입이 반복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이어 “시장을 중심에 놓고 시대에 맞지 않거나 보호 사각을 만든 제도를 과감하게 고치는 역할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진영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 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성형주 기자


-윤석열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에 대한 평가는.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해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근로시간제 개편안과 관련해 여론이 악화하자 재검토를 지시하는 등 발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때 윤석열 정부에서는 노동시장 개혁과 유연화를 다루기 어렵겠다고 봤다. 법치를 통해 노사 관계를 풀어가려 노력했는데 이는 평가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재명 정부는 원청 교섭권을 강화하고 노동조합 손배소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 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을 재추진한다.

△법의 세부 내용에 대해 우려가 있다. 독일과 프랑스에도 노란봉투법과 유사한 제도가 존재하지만 우리가 어떤 형태를 쫓아갈 것인지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여전히 있다. 원청 교섭권 확대 자체보다 노동조합의 불법행위에 면책을 부여할 가능성에 더 큰 우려가 제기된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려면 불법적인 행위를 부추기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경영계가 바라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완화는 이 정부에서 실현되기 어려울 것 같다.

△중대재해법이 유지되더라도 실질적인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한다. 지금까지 판례를 보면 법원이 높은 입증 부담을 이유로 처벌에 소극적인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점은 중대재해법이 외국 유사 법과는 달리 법인 책임이 아닌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구조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산업재해 위험이 높은 직종과 산업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 체계가 마련됐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더 위험한 일을 하는 근로자가 더 높은 임금을 받는 ‘보상적 임금 격차’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한 주 4.5일제는 어떤가.

△근로시간 제도는 우리 노동시장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 중 하나인 유연성 부족과 깊이 연결돼 있다. 근로자마다 선호하는 근로시간과 일하는 방식이 다양하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일하는 과거 제조업 시대처럼 획일화해서는 안 된다. 플랫폼 종사자들만 하더라도 근로시간 자체를 명확히 정의하기조차 어렵지 않나. 우리 산업 지형도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중심이 옮겨지고 있는데 근로시간 단축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특히 근로시간은 소득과 직결된다. 근로시간이 줄면 생산과 소득 모두 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국민 소득 창출 기회를 제한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 중 하나는 해고 완화인데, 해고는 노사 금기어다.

△이직과 해고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부분이다.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새로운 취업 기회도 줄고 노동시장의 역동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해고는 당사자에게 단기적으로 큰 충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해고로 인한 소득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충분한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진다면 해고는 오히려 취업을 더 빠르게 하고 노동시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과 사회안전망 정책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이재명 정부에서 해고 논의가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직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노동시장에서의 자유로운 이직, 해고와 구직 과정을 통해 가능하다. 한국 노동자의 직업 만족도가 세계 평균에 비해 매우 낮은 것도 유연한 이동이 부족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동성은 기업 입장에서도 적합한 인재를 확보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노동시장이 경직되면서 오히려 기업이 신규 채용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젊은 직원을 새로 뽑기보다 기존 경력 직원을 안고 가거나 아예 채용을 회피하는 게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법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청년 실업의 증가도 한 번의 채용 기회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노동과 복지는 상호 보완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 같다.

△노동시장 정책의 핵심 목적은 궁극적으로 소득 보전이다. 복지 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예를 들면 1930년대 미국에서 최저임금 제도가 확대된 이유 중 하나는 정부가 국민의 소득 수준을 파악할 수 없어 복지 정책 대상자를 선별하기 어려워서였다. 그 결과 직접적인 복지 지원 대신 기업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득을 보전하는 최저임금 정책을 확대했다. 당시 정부의 어려운 재정 여건도 정부가 기업에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의 정책을 택한 배경 중 하나였다.

과거 정부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동시장에 대한 직접 개입 방식의 정책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정부가 실시간으로 개인의 소득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고 누가 지원이 필요한지 정확히 식별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사업 실패로 어려움에 처한 국민에게 직접적이고 신속한 지원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복지 제도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중복돼 국민은 자신이 받을 수 있는 혜택조차 제대로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노동시장 개입 정책보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사회안전망 정책이 필요하다.

-가장 큰 복지 정책인 최저임금 제도가 갈 방향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정부의 무책임함이 드러난다고 느낀다. 최저임금 제도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해 만든 게 아니라 정부 주도로 도입됐다. 최저임금을 준수하라고 강제하는 정부가 정작 결정 과정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최저임금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매년 심의하는 대신 정부 주도로 5년에 한 번 위원회가 심의하고 그 이후 5년 동안 물가상승률에 연동해 자동 조정하는 방식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 존중과 실용적 시장주의를 동시에 내걸었다.

△노동 유연성과 사회안전망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할 방향이다. 윤석열 정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유연화 정책 중 가장 쉬워 보여 우선적으로 추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예상되는 다른 유연화 정책들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할 사회안전망 정책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결국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노동계가 근로시간 개편보다 해고 관련 논의에 훨씬 더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는 점을 잘 안다. 이재명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해고 제도를 개선하려고 한다면 해고 당사자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 ‘이 장치’로 사회적 설득에 나서야 한다. 현 정부는 여당의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보다 정치적으로 노동정책을 추진하기에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

◇김진영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교수의 지도를 받고 1994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 경제학과에서 근무하다가 2006년부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노동 3대 학회 중 하나인 한국노동경제학회 34대 회장을 거쳐 지난해 3월 고려대 노동대학원 16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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