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관리장 건설·운영 재원으로 쓰일 사용후핵연료 관리 부담금을 12년 만에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문재인 정부 당시 탈원전 기조와 함께 동결됐던 사용후핵연료 관리 부담금을 재정비해 원자력발전 생태계 정상화 기반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부담금이 현실화될 경우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가져가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믹스 정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부담금을 재산정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이 부담금은 원전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발생한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한국수력원자력이 납부하는 것으로 2009년 처음 신설됐다. 다발(핵연료 뭉치)당 납부 금액은 경수로 3억 1981만 원, 중수로 1320만 원으로, 이 기준에 따라 한수원은 매년 약 8000억 원의 부담금을 내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이 부담금은 지난해 징수액보다 6.5%(520억 원) 늘어난 약 8450억 원이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 산정 기준이 12년째 방치돼 있다는 점이다. 앞서 정부는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물가 상승률 등을 바탕으로 사용후핵연료 관리 사업비를 기존의 28조 원에서 53조 원으로 대폭 확대하고 2013년부터 사용후핵연료 관리 부담금을 경수로 8.9%, 중수로 219% 인상한 바 있다. 이후 정부는 2년마다 부과 기준, 요율 등 부담금 산정 기준 적정성을 검토하기로 했으나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단가 재산정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그간의 물가 상승률 및 원전 비중 확대 추세 등을 반영해 부담금 인상을 추진했지만 대규모 부담금 개편, 개각 등 이슈로 진행되지 못했다.
부담금 현실화 작업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이 사용후핵연료와 같은 고준위 방폐물 임시저장시설은 포화상태에 임박했다. 산업부가 2023년에 제10차 전기본을 바탕으로 산정한 추정치에 따르면 현재 각 원전 내 마련된 고준위 방폐물 임시저장시설은 2030년부터 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후 원전 수명 연장이나 신규 원전 추가 건설 계획이 담기지 않은 제9차 전기본을 바탕으로 산출한 2021년 12월 전망치보다 포화 시점이 1~2년가량 단축됐다.
정부는 올 2월 국회에서 기존 임시저장시설 대신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물 중간저장시설을, 2060년까지 영구저장시설을 건설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담은 특별법(고준위법)이 통과된 만큼 시설 건설·운영 재원이 될 부담금 현실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고준위 방폐물 관리 시설의 총사업비 규모, 물가 상승률, 할인율 등을 고려해 부담금 납부 기준을 재산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연내 부담금 기준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30년께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시설이 없어 원전 가동을 멈추는 일이 없도록 단가 재산정을 통해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위한 기금을 충분히 확보하고 건설 작업 구체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한편 국회 예산정책처는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부담금 단가를 재산정할 경우 다발당 경수로·중수로 단가가 각각 현재보다 33~50%가량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예정처가 확인하기 어려운 미래 사업비나 미래 사용후핵연료 발생량 등은 고정하고 물가 상승률, 20년 만기 국고채 이자율 등만 고려해 산정한 것으로, 사업비나 발생량이 증가할 경우 인상 폭은 이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담금 규모가 확대되면 원전 발전단가 상승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가 에너지믹스 정책을 꾀하는 만큼 부담금 인상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영구 처분을 위해서는 구리 용기 등 기자재가 필요한데 이 같은 기자재 값이 많이 올라 부담금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며 “원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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