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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칼럼] 노인 이동권 보장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얼마 전 노화 연구 협력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나고야에서 도쿄로 이동하기 위해 신칸센을 타려는데 승강장과 열차의 높이가 같은 것이 눈이 들어왔다. 주위를 보니 플랫폼이 혼잡한데도 어르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내리고 타는 속도가 빨랐다.

문득 출장 때 자주 이용하는 KTX의 모습이 떠올랐다.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이나 유아를 동반한 사람들은 승하차 때 주위의 눈치를 본다. 휠체어를 탄 이가 있을 때는 역무원이 달려와 슬로프를 설치해야만 겨우 승·하차가 가능하다.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이 점점 외출을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단 교통수단뿐 아니라 아직 우리 주위에는 이러한 사소한 장벽들이 널려 있다. 신칸센에서 느낀 섬세한 배려가 단순히 '편리함'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 것은 이동의 제약이 곧 사회적 제약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작년 말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는 단지 인구 통계의 변화가 아니라 국가의 경제, 복지, 의료, 노동, 도시계획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구조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신호다. 고령화로 인한 경제활동 인구의 감소와 보건복지에 대한 부담 증가를 고려할 때 건강한 노인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 유지에 중요한 과제다. 노인의 노동 참여는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삶의 질과도 관련되며 이 전제 조건 중의 하나가 자립적인 이동성이다.

노인의 이동권 보장은 단순히 물리적 장벽을 제거하는 차원을 넘어 여러 의미를 지닌다.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면 노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나빠져 의료비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 외출이 어려워지고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 활동량 감소로 인해 만성 질환 악화는 물론 사회적 고립감과 우울증 발생 가능성까지 커진다. 노인의 우울증과 치매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가 활발한 사회활동 참여와 규칙적인 외출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동의 자유는 노인의 건강 유지에도 필수 조건이다. 이동권이 보장되면 사회적 활동이 활발해지고 경제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선순환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노인의 이동권 보장은 주로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요금 면제나 할인 같은 경제적 지원에 집중됐다. 이러한 지원이 노인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활동 증가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 이동 자체의 불편함과 물리적 장벽은 그대로 방치한 채 비용 지원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경제적 혜택을 넘어 실질적인 이동환경 개선에 더 적극적인 정책적 투자가 필요하다.

우선 모든 교통시설에서 물리적 장벽을 제거하고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높여야 한다. 지하철과 버스정류장의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높이를 일치시키거나 단차를 줄이고, 엘리베이터와 무장애 경사로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 보도 위의 불필요한 턱을 제거하고 노면을 평탄화해 어르신들이 안전하고 쉽게 보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보행로의 폭을 충분히 확보하고, 쉼터와 벤치를 설치하는 등 노인 친화적 환경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관련 법령의 실효성을 높이는 작업이 시급하다. 교통약자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법적으로 명확히 하고 정기적인 점검과 제재를 통해 제도 이행을 실질화해야 한다.

아울러 대중교통 종사자에 대한 교육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일본 JR은 승무원을 대상으로 고령자의 청각·시각 기능 저하에 대한 이해와 휠체어 보조법 등을 포함한 감수성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영국 런던교통공사는 고령자와 치매 환자에 대응하기 위한 맞춤형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운영하며 싱가포르는 고령자의 행동 특성과 비언어적 지원 방법을 포함한 교육을 시행 중이다. 이처럼 해외 주요국들은 고령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인적 서비스 개선까지 체계화하고 있다.

기업과 민간 부문도 이제 고령 친화적 공간과 서비스를 경쟁력 있는 미래 자산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비용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초고령사회에 대비하는 가장 현명한 투자다. 고령사회 해법은 단순한 복지 지출 확대가 아닌, 노인이 능동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그 출발점이 바로 이동권 보장의 실현이다. 모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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