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조직에서 피해자에게서 돈을 받아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경우, 범죄 전모를 몰랐더라도 피해자의 돈을 수거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면 사기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단순 가담자라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면 형사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취지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사기 및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된 이 모 씨 사건에서 2심의 무죄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씨는 2022년 인터넷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한 뒤, ‘김미영 팀장’이라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고객에게 퇴직금과 월급 정산 서류를 전달하는 단기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았다. 이후 피해자 8명으로부터 총 1억 6900만 원을 전달받는 ‘현금수거책’ 역할을 맡아 범행에 가담했다.
1심은 “현금수거책은 보이스피싱 범죄를 완성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단순 가담자라 하더라도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피고인이 사기 범죄라는 점을 알지 못했고 고의도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무죄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현금수거를 통해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점을 알았거나, 적어도 미필적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공모사실이나 고의는 반드시 명시적으로 드러날 필요는 없으며, 다른 공범과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역할을 나누는 과정에서도 형성될 수 있다”며 “피해자의 돈을 수거한다는 사실만 인식해도 공모로 볼 수 있고, 범죄 전체 구조를 몰랐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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