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건축사들의 장점이라면 섬세함과 관찰력, 책임감 그리고 높은 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장점을 잘 활용하면 한국 건축계가 많이 발전할 겁니다.”
신경선 한국여성건축가협회 회장은 1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건축계에서 여성 건축가들의 수가 아직 적기도 하기만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있다”면서 "사회적 인식이 달라져야 하지만 여성 건축가들도 설계·기획자로서 능력을 갖추고 건축계의 유리 천장을 깨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1997년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건축계에 들어선 신 회장은 신경선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며 대구 동아백화점 리모델링 프로젝트와 충남 서천 한산모시 야외 무대 설계 등을 맡아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초 여성 건축인의 자질 향상과 권익 신장, 회원 간 친목 도모, 국제 교류, 사회봉사를 통한 건축 문화 창달을 꾀하는 여건협 회장에 취임했다. 1982년 설립된 여건협은 전국적으로 1440여 명의 회원을 두고 국제회의 참석, 국내외 건축 답사, 심포지엄 개최, 작품·논문 발표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건협은 지난달 20일부터 25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025 여성건축가 기획전’을 개최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 이번 행사에서는 2050 미래비전 선포식, 국제 심포지엄, 국제 교류전, 회원 교류전, 학생 공모전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신 회장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여성 건축가들의 다양한 시선과 경험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며 “여성 건축가에 대한 건축계 유리 천장에 균열을 내는 행사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여성 건축가 기획전을 통해 협회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고 무엇보다 여성 건축가들의 위상과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재확인하는 뜻깊은 행사였다”고 덧붙였다.
건축 분야는 한때 남성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이 때문에 과거 여성 건축인들이 설 자리가 많지 않았다. 신 회장은 “현재 국내 건축사 정회원은 1만 7083여 명으로 이 가운데 여성은 2359여 명”이라며 “국내에서 여성이 처음으로 건축사 자격증을 딴 게 1965년인데 그 당시에 비해 여성 건축사의 수는 늘었지만 아직 그 비중이 14%도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신 회장은 여성 건축인들의 수가 아직 적기도 하기만 특히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축 현장에서 여성이 결정권을 갖는 경우는 아직도 매우 드물다”며 “건축 관련 공모전을 하더라도 총괄 건축가는 아직도 남성 건축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건축 업계 취업문을 두드리면 면접조차 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고 현재의 여성 건축사들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다”며 “건축 업계가 아직 여성들에게 활짝 개방되지 않아 애로가 많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은 결국 실력과 의지”라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건축계의 유리 천장을 깨는 실천가이자 설계자, 기획자로서의 꿈을 꾸면서 건축과 여성의 가능성을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각오가 필요하다”며 “건축은 단순히 벽돌을 쌓는 일이 아니라 시대의 삶을 짓는 일이고 그 일에 있어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장벽이 아니라 자산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이 1979년 제정된 후 국내에서는 아직 수상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반면 일본은 9명에 이르고 중국은 올해 수상자인 류자쿤을 포함해 2명이 수상했다. 이번 여성건축가 기획전에는 2010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일본 여성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가 참석해 주목받기도 했다. 신 회장은 “경직된 건축 관련 제도와 기관의 간섭, 그리고 건축가를 존중하지 않은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며 “우리나라에서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우선적으로 기관장 말 한마디에 건축사가 짜놓은 설계가 바뀌고 건축사를 하청 직원 정도로 보는 시각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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