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 복합 위기 속에서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가 드높다. 그와 동시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이어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조차 없이 시작한 탓인지 알 수 없으나 “이재명이 진짜 대통령이 된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아직도 들린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 상상 밖의 충격적 사건들이 속출했으니 그럴 테지만 새 정부 출범 뒤 새로 불거진 안팎의 불안 요소들도 예사롭지 않다.
당장 이 대통령 관련 5개 재판과 헌법 84조를 둘러싼 공방이 분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11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현장 의원총회를 열어 이 대통령의 각종 재판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된 데 대해 “사법부의 자해 행위”라고 비판하고 재판 재개를 촉구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법원의 연기 결정에 대해 “당연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84조 규정이 기소만을 뜻하는지, 재판까지 포함하는지 명확하지 않아 생긴 혼란이다. 야당은 6·3 대선 심층 출구조사에서 응답자의 63.9%가 ‘이 대통령 재판을 계속해야 한다’고 답한 것을 빌미 삼아 총공세를 펼 태세다. 이 대통령이 당당히 재판에 임하든, 다른 해법을 찾든 이 혼란을 속히 매듭지어야 한다.
한미 동맹의 불확실성도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한미가 특별한 동맹”이라고 확언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을 미국으로 초청하고 ‘동맹 골프 라운딩’까지 약속하는 등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그런데도 한미 정상 간 첫 통화가 늦게 이뤄졌다는 점 등을 들어 새 정부에 대한 미국의 불신을 기정사실화하려는 기류가 있다. 미국에서 제기되는 우려의 시선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 대통령의 대선 승리가 확정된 3일 “이번 대선으로 탄핵의 장(章)이 종료됐지만 새롭고 더 힘든 장을 열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의 관세, 중국의 수출 통제, 북한·러시아 관계 등을 언급하며 “이 대통령이 다뤄야 할 외부 환경은 훨씬 엄혹하다”고 우려했다.
이런저런 불안 속에서도 이 대통령의 출발은 좋은 편이다. 우선 ‘1호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하는 등 경제 살리기에 몰두하는 자세에는 안정감이 있다.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대신하며 국무회의에 열중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취임 연설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협력을 다지고 주변국 관계도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 밝힌 이 대통령의 외교안보관도 믿음직하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보다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먼저 정상 통화를 가진 것은 ‘국익 중심 실용 외교’로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그러나 헌법재판관 후보 물망에 이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던 이승엽 변호사를 올린 것은 아쉽다. 더욱이 ‘이해충돌 아니냐’는 정당한 문제 제기에 “어떤 것이 이해충돌인지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대통령실의 답변은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로 비칠 수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첫 출근 메시지로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한 것은 시장의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정부에 온갖 책임을 떠넘겨 불안감을 키우고 반사이익이나 챙기려는 태도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천명한 새 정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7일 여당 전현직 지도부 의원들과의 만찬에서 “정치적 성과보다는 국민 한 분 한 분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했다. 맥은 잘 짚었으나 더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이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언급한 ‘민생·경제·외교·안보·민주주의 모든 영역에서 엉킨 실타래처럼 겹겹이 쌓인 복합 위기’ 상황을 빨리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는 사회’를 이루려면 민심의 전폭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12·3 비상계엄 후 불안한 나날을 겪은 국민들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정치를 새 정부에 기대하고 있다. 실패한 정부 뒤에 나타난 이재명 정부가 다시 실패의 길을 답습하는 과오를 남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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