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입대한 것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였지 대통령의 '생일 축하'를 위한 퍼레이드에 동원되거나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기 위한 게 아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만난 한 40대 전역 군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노 킹스(No Kings)' 시위에 참석한 이유를 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계인 80대 백인 노인 역시 "나는 1940년대 독일에서 태어났고 파시즘이 어떤 모습인지 안다"며 "트럼프는 완전히 파시스트"라고 꼬집었다.
미국 워싱턴DC에서 미 육군 창설 250주년 행사가 열린 14일(현지 시간) 샌프란시스코 전역에서는 대대적인 노 킹스 시위가 열렸다. 실리콘밸리를 가로지르는 엘 카미노 리얼 대로에는 팔로알토 테슬라 매장부터 서니베일까지 7마일(11.26㎞)에 걸쳐 시위대가 '인간 띠'를 만들었다. 스탠퍼드대가 위치한 팰로알토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페이팔을 창업한 곳이자 오랜 기간 거주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팰로알토 테슬라 매장은 '반 트럼프, 반 머스크 시위'의 상징 같은 장소로 자리를 잡았다. 이날도 주최 측 추산 7000명 이상의 시위대가 참석, '미국에는 1776년 이후로 왕이 없다(King-Free Since 1776)', '트럼프를 탄핵하라', '이것이 민주주의의 모습이다(This is what democracy looks like)', ‘우리에게는 왕이 필요 없다’ 는 구호를 외쳤다. 대로를 오가는 차량들도 경적을 울리거며 시위대에 지지를 보탰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돌로레스 파크부터 시청까지 수천 명이 행진을 했고 오클랜드, 산호세 다운타운 등에서도 수천 명이 집회를 갖고 행진을 했다. 다만 시위 주최 측이 시위대에 무기를 휴대하지 말 것과 경찰과 대화도 나누지 말 것을 당부해 경찰과 시위대의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샌프란시스코뿐만 아니라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로스앤젤레스(LA)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미 전역에서 대대적인 반 트럼프 시위가 열렸다. 앞서 인디비저블(Indivisible),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등 진보성향 단체로 구성된 '노 킹스' 집회 주최 측은 이날 미국 전체 50개 주(州)와 해외 각지의 약 2000곳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반대하는 저항 시위 개최를 예고했다. 주최 측은 행사 이후 2020년 미 전역에서 벌어진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인 수 백 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추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경찰 측 추산을 인용해 이날 필라델피아 집회 참가자만 약 10만 명에 달했다고 전했고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최대 규모라고 짚었다. 시애틀타임스는 이날 지역 집회에 7만 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대부분 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됐지만, 일부 지역에선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도 빚어졌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는 시위가 공식 종료된 뒤 경찰 저지선을 넘어서려는 일부 시위자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액을 분사해 저지했다. 라틴계 인구가 많은 조지아주 애틀랜타 북부에서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을 향한 별도의 항의 시위가 벌어져 8명이 체포됐고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도 3명이 체포됐다. 시카고에서는 수백명의 시위대와 경찰이 2시간의 대치 끝에 물리적 충돌 없이 상황이 종료됐다. 이번 시위 사태가 촉발된 LA에서도 ‘노 킹스’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경찰이 최루탄과 고무탄 등으로 해산을 시도하며 크고 작은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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