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추진하는 ‘더 센 상법 개정’ 추진으로 경영계가 긴장하고 있다. 본래 이사의 충실 의무라는 것은 이사가 이사의 지위에서 회사 재산을 편취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사가 주주의 재산을 편취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어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란 법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충돌 문제는 이미 상법 제398조에 이사 외에도 주요 주주, 그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등과 같은 특수관계인이 회사와 거래하는 경우를 ‘자기거래’로 규정해 통제하고 있어 추가 입법이 불필요하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1400만 소액 투자자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이 부분은 자본시장법을 통해 보정하면 된다.
감사위원 2명 이상 분리 선임에 더해 최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이 가진 전체 주식의 3%만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합산 3%룰’을 적용하면 필시 2개의 감사 또는 감사위원직을 외부 세력에게 내주게 된다. 3% 이상 가진 대주주에 대한 권리 행사 제한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반헌법적인 입법이 된다. 더군다나 감사위원은 이사 자격이 전제되는 지위이므로 대주주의 ‘이사 선임권’을 박탈하는 것이 돼 주주의 경영권과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한다. 1주에 대해 뽑아야 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과정에서 주주 간 파벌 싸움을 격화시키고 이사회를 이해집단 간 대립의 장으로 변질시킨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자들의 주주제안 내용을 보면 임원선임 제안, 집중투표 의무화를 요구하는 전제로서 정관변경 제안이 많았다.
‘더 센 상법 개정’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 하에 이사회 구성에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함으로써 기업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기업 이사회를 이런 식으로 흔들면 기업들은 상장 자체를 폐지하고 신규 상장을 재고할 것이다. 신성통상·텔코웨어·한솔PNS 등이 이미 자진 상폐를 준비 중이다.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 가운데 36.2%는 이사의 충실 의무가 확대되면 상장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하겠다고 답변했다. 상장기업도 본질적으로 이윤 추구와 주주 이익 보호가 우선되는 영리기업일 뿐 ‘공공재’’가 아니다. 국가가 검증되지 않은 지배구조 모델을 강요하면 경영 효율성 저하, 주주권 침해, 시장 경쟁력 약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더 센 상법 개정의 다음 단계는 기업들의 탈한국(Korexit·코렉시트)이 될 것이다. 올해 1월 기준으로 전 세계 84개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9930개사에 달한다. 해외 진출은 생산·서비스·판매 법인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지만 KOTRA의 ‘2025년 디렉토리 조사’에 따르면 생산 법인 형태의 진출이 28.4%로 가장 많다. 단순한 판매망 구축이 아니라 제조·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탈한국이 본격화됐음을 보여준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2816개 국내 기업이 해외로 이탈한 반면 국내로 복귀한 기업은 22개에 불과했다. 세대 간 기업의 이전을 불가능하게 만든 상속·증여세법, 노란봉투법, 주4.5일제에 더해 더 센 상법 개정으로 기업가 정신이 위축되고 기업들의 탈한국이 현실화될까 두렵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