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고율 관세 부과를 무기로 베트남과의 무역협상에서 중국산 기술 부품 사용을 대폭 줄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베트남은 중국의 주요 투자국이자 무역 파트너로, 급격한 공급망 전환은 베트남 경제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15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베트남이 조립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전자제품의 '중국산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베트남이 조립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에서 중국 부품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겨냥한 조치로, 최대 46%의 고율 관세도 예고된 상황이다.
베트남은 애플, 삼성, 메타,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들의 핵심 생산기지다. 하지만 많은 제품이 중국산 부품에 의존해 조립된다.
한 소식통은 “미국은 베트남이 중국산 첨단기술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를 바란다”면서 ”이는 미국이 중국 기술에서 벗어나고, 공급망을 재편하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상현실 기기처럼 베트남에서 조립되지만 중국 기술 의존도가 높은 제품을 줄이는 것이 미국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압박을 받은 베트남 정부는 자국 전자업체들과 부품 국산화 방안을 논의했지만, 업계는 “기술력과 시간 모두 부족하다”며 단기 대응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베트남 협상단도 미국의 이같은 요구가 ‘힘들고 까다롭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와 함께 중국산을 베트남을 통해 우회 수출하는 ‘택 갈이’ 문제도 문제 삼고 있다.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베트남에서 단순 조립해 ‘Made in Vietnam(메이드 인 베트남)’으로 수출하는 방식이 불공정 무역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미 상무부는 단속 강화를 요구했고, 베트남 당국도 단속을 약속했다.
향후 미국은 중국산 부품 비중에 따라 차등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기준은 아직 협의 중이며, 7월 8일로 예정된 관세 시행 전까지 합의 여부가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이번 압박이 베트남에 공급망 독립이라는 숙제를 안겼다고 분석한다. 베트남은 최근 몇 년간 제조업 생태계를 키워왔지만, 중국과의 기술 격차는 여전히 15~20년 이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공급망 전문가 카를로 치안도네는 로이터에 “전자·섬유 등 분야에서 베트남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정밀 기술과 가격경쟁력에서 중국을 넘어서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이 베트남에 대한 주요 투자국이자, 동시에 안보 불안을 주는 국가인 만큼 갑작스러운 공급망 변화로 양국간 경제적·외교적 마찰이 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편 또람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은 이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고율 관세와 공급망 전환 문제 등 핵심 통상 현안이 직접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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