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하게 중입자치료를 시행 중인 연세암병원이 올 하반기 중입자 갠트리(회전형) 치료기 1대를 추가 가동한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단일 의료기관으로는 유일하게 총 3대의 중입자치료기를 동시 가동하며 암의 전 생애주기를 아우르는 통합형 치료 플랫폼을 실현하겠다는 구상이다.
최진섭 연세암병원장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올 8~9월경 중입자치료기를 완전히 가동하며 신약 치료, 중개연구, 다학제 진료, 로봇수술 등 전방위 암 치료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정밀의료를 통해 암 치료의 미래를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연세암병원은 1969년 국내 최초 암 치료 전문기관으로 설립된 이래 국내 처음으로 선형가속기를 도입하고 골수이식에 성공하는 등 암치료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2005년 로봇수술기를 도입하고 2023년 중입자치료기를 도입한 것도 국내 첫 시도였다. 연구 분야에서도 국내 유일하게 네이처(Nature) 선정 세계 암 연구 분야 100대 의료기관으로 이름을 올리는 등 세계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연세암병원의 뛰어난 진료역량은 3대 난치암으로 꼽히는 췌장암, 간암, 췌장암 치료 성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2015~2019년 기준 연세암병원의 폐암 상대생존율은 43.7%로 국내 평균치인 34.7%를 크게 웃돌았다. 같은 기간 연세암병원의 간암췌장암 상대 생존율은 각각 39.9%·16.5%였다. 이는 국내 상대생존율인 37.7%·13.9%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최 병원장은 "그간 쌓아온 임상·연구 노하우를 바탕으로 난치암 정복을 위한 인프라 확대와 함께 치료 시스템을 더욱 고도화하겠다"고 말했다. 연세암병원은 2023년 4월 국내 최초, 세계 16번째로 중입자치료를 시작했다. 중입자치료는 X선이나 감마선을 이용하는 기존 방사선치료와 달리 가속기(싱크트론)로 탄소 원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뒤 고정형 또는 회전형 치료기를 통해 암세포에 에너지빔을 조사하는 방식이다. 빔이 인체를 통과할 때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가 암조직을 지나치는 순간 에너지 전달이 절정에 이르렀다가 소멸되는 ‘브래그 피그(Bragg Peak)’ 원리를 이용한다. 생물학적 효과가 X선보다 2~3배 강력한 데도 암세포 주변 정상세포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건 이런 특징 때문이다. 암 주변 정상조직에는 거의 손상을 가하지 않고 암세포만 정밀 타격할 수 있다고 해서 '꿈의 암치료법'이라고도 불린다.
중입자 치료는 이론상 혈액암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형암에 적용할 수 있다. 연세암병원은 초창기 전립선암을 시작으로 작년 6월부터 췌장암·간암·폐암 치료를 시행했다. 현재까지 중입자치료를 받은 췌장암 환자는 100명 남짓이다. 폐암 부문에서는 30명, 간암 부문에서는 간 부분 절제술 후 간 내 재발 환자 등 기존에 치료가 제한적이었던 사례를 포함해 총 17명의 간암 환자들이 중입자치료를 받았다. 임상 개발 단계의 신약이나 간동맥 화학색전술, 방사선 색전술, 외부 방사선 조사, 간이식 등 근치적 치료방법과 중입자치료를 병행하며 장기 생존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새 갠트리 치료기를 포함해 총 3대의 치료기를 가동하게 되면 두경부암·골육종암 등으로 치료 암종이 확대된다. 최 병원장은 "기존의 치료 방법들과 중입자치료의 병용을 통해 최적의 치료 프로토콜을 만들어 갈 것"이라며 "국소진행성 환자 중 중입자치료가 어려웠던 환자군에 대한 적용을 확대하고 소수전이암 환자에서도 치료 성과를 높이기 위해 중입자치료 적용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밀의료 실현을 위해 빅데이터 기반의 치료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AI 기반의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또한 단순히 치료 중심의 접근을 넘어 암이라는 질환의 포괄적인 치료를 제공하고자 암예방센터, 암지식정보센터, 개인맞춤치료센터, 흉터성형레이저센터, 완화의료센터 등 5대 특화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연세암병원은 대한민국 첫 암센터로서 로봇수술, 중입자치료 등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꿔 왔다”며 “앞으로도 세계적 수준의 연구·치료 플랫폼을 발전시켜 환자들이 최상의 의료 가치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