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갈등과 경제 불확실성 등 주요 불안 요인이 계속되면서 뉴욕증시는 혼조 마감했다. 7월 금리 인하 기대로 상승 출발했던 증시는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유럽에 밝힌 것으로 전해지면서 흔들렸다. 미국이 삼성전자 등 해외기업이 중국에서 운영하는 생산시설에서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도입할 때 일일이 검토하겠다는 소식도 미·중 갈등의 우려를 키웠다.
20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35.16포인트(+0.08%) 오른 4만2206.82에 거래를 마쳤다. 반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13.03포인트(-0.22%) 떨어진 5967.84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98.86포인트(-0.51%) 하락한 1만9447.41에 장을 마감했다. CFRA 리서치의 수석 투자 전략가 샘 스토벌은 “세상에 이처럼 불확실한 일이 많은 상황에서 주식을 매수해서 주말동안 보유하려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며 “지정학적 긴장이 진정된다면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날 증시 흐름을 설명했다.
미국 국채 시장도 방향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3.6bp(1bp=0.01%포인트) 하락한 3.918%를 기록했다. 국채 금리 하락은 금리 상승을 의미한다. 다만 장기물로 갈 수록 수요가 받쳐주지 않으면서 30년 물 수익률은 0.3bp오른 4.896%를 기록했다.
월러 연준 이사 “7월 기준금리 내려야” vs 바킨 연은 의장 “인하 서두를 이유없어”
이날 증시는 7월 금리 인하를 지지한 크리스토퍼 월러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의 발언에 힘입어 상승 출발했다. 월러 이사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7월에 이것(금리 인하)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월러 이사는 “만약 고용시장에 둔화 위험이 우려된다면 기다리지 말고 지금 해야 한다”며 “고용시장이 망가지는 걸 볼 때까지 굳이 기다렸다가 금리를 낮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다음(7월) 회의에서 금리 인하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데 찬성한다”며 “왜냐하면 기준금리를 낮추기 전에 일자리 시장이 무너지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월러 이사의 7월 인하 주장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이틀 전 금리 관망기조를 강조한 것과도 맥이 다른 발언이다. 파월 의장은 지난 18일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동결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경제의 전개 경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며 “그 후에야 정책 기조를 조정할 지 여부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7월 인하는 시장의 전망보다도 이르다. 현재 금리 선물 시장에서는 연준이 당장 7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확률은 14.5%에 그치고 있다.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으로 인해 9월에 인하할 가능성이 그나마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에 월러 이사의 7월 인하론은 금리 인하 여부와 시점을 둘러사고 연준 내부에 의견 차이가 심화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연준이 6월 FOMC에서 새롭게 내놓은 점도표에 따르면 연준 관계자 중 올해 두 차례 금리 인하를 전망하는 위원이 8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연내 동결을 전망하는 위원도 7명에 이르렀다. 실제로 이날 토마스 바킨 리치몬드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데이터를 보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할 급한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며 “지난 4년 동안 우리가 물가상승률 목표(2%)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에 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연준이 고려할 사항은 고용 시장 약화가 아니라 인플레이션 통제라는 취지다. 바킨 총재는 경제 둔화 우려에 대해서는 “(소비자 지출이) 괜찮게 유지되고 있다”며 “거품도 없고 약하지도 않다”며 금리 동결에 힘을 실었다.
이같은 흐름은 추후 연준의 결정에 따라 시장의 변동성을 높일 전망이다. 추후 인플레이션 상승과 경제 둔화가 동시에 나타날 경우 금리 인하 관측과 동결 전망이 힘겨루기를 하면서 시장이 방향을 잡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블랙록의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인 릭 리더는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금리 인하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연준 위원들의 수가 늘었다는 것”이라며 “위원회 내에서 의견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이 부분을 주목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공격할지 안 할지 2주 내 결정하겠다”며 미군의 이란 공격 개입을 유보한 점도 이날 장 초반에는 상승 요인이 됐다. 이 장 초반 상승하는 데 기여했다. 다만 이날 시간이 갈 수록 이란의 강경한 입장이 확인됐다. 이날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외무장관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을 만나 회담했지만 이란 측은 우라늄 농축 권리를 계속 주장했다고 월스리트저널(WSJ)는 보도했다. 이란은 아울러 이스라엘의 공격이 중단될 때까지 이란이 미국과 핵 협상을 재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아라그치 장관은 회담 후 “이란은 침략이 중단되고 침략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면 다시 한번 외교를 고려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중동 긴장이 지속되면서 방위 관련 종목은 상승했다. 보잉이 0.18% 오른 것을 비롯해 GE항공우주는 0.98%올랐으며 로켓랩은 6.54% 상승했다. SPDR S&P항공우주 및 방위 ETD는 0.44% 상승했다.
이런 가운데 무역 문제도 곳곳에서 삐걱댔다. WSJ는 이날 미국 상무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가 중국에서 운영하는 생산시설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 반입을 통제하겠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 조치는 현재 트럼프 행정부에서 확정된 사안은 아니지만, 실제로 추진이 확정될 경우 중국에 첨단 반도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 WSJ는 “이달 초 미국과 중국이 런던에서 합의한 무역 협의에는 양국이 서로를 해치기 위한 새로운 수출통제 조치 등 부정적 조치를 유보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며 “중국과 갈등의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방위비 분담을 둘러싸고 일본과의 고위급 회담이 취소되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일본의 국방비 지출 증액 수준을 기존에 요구했던 국내총생산(GDP)의 3%에서 3.5%로 더 높였고, 이에 반발한 일본이 7월 1일로 예정된 2+2 연례 안보회담을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아시아 안보 전문가인 잭 쿠퍼는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에서 동맹국의 방위비 지출 수준에 대한 기대치를 일관성 없고 비현실적으로 제시한 것은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미국을 지지하는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의 목소리를 해당 국 내에서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UBS 웰스 매니지먼트의 브라이언 뷰텔은 “현재 시장은 지정학적 긴장과 관세 불확실성, 연준의 향후 움직임에 대한 의문 등 많은 요소들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며 “앞으로 다양한 위험 요인이 존재하긴 하지만 주식은 경제 성장의 선행 지표이고 우리는 올해 경제가 견조하게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보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