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면서 노력하면 열매는 반드시 열립니다.”
김복태 동일운수·검단교통 회장은 2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이를 실천하기는 사실상 힘들다”며 “80년을 산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한 걸음 한 걸음이 고난이었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여정이었다”고 말했다.
평생을 사람 중심의 경영을 실천해온 김 회장은 자신의 삶을 담은 자서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를 최근 펴냈다. 구두닦이 소년에서 ‘인천의 택시왕’으로 불리기까지 가난과 고난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걸어온 김 회장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기가 아닌 포기하지 않는 삶의 일대기다.
1945년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초등학교 졸업 후 단신으로 서울로 상경했다. 그는 “가난이 너무 싫어 고향을 떠났는데 가진 것 하나 없이 서울역 앞 노숙으로 시작한 청소년기의 삶은 그 자체가 절망의 연속이었다”며 “기술도 없고 돈도 없이 상경한 서울에서 걸인처럼 밥을 얻어먹으면서 생활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이렇게 살려고 서울에 온 게 아니다’라는 마음가짐을 하루에도 수없이 되뇌이며 포기하지 않았다. 노숙 생활을 하던 중 처음 접하게 된 일자리가 구두닦이였다. 손님들의 구두를 수거해오는 일명 ‘찍새’로 취업을 했다. 이때 한 손님을 만나면서 ‘기술’이라는 것을 익히게 됐다. 김 회장은 “당시에는 찍새들이 다방을 돌면서 구두를 수거해왔는데 그 다방을 자주 오던 한 손님이 나를 좋게 봤는지 ‘다른 일을 해볼 생각 없느냐’고 물었다”며 “그래서 그 손님을 따라갔는데 양복점 주인이었다. 그곳에서 양복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인정받으면서 노숙 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고 허름한 전세방 생활도 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가 택시 업계에 몸을 담게 된 것은 군대 전역 후부터였다. 군대에서 운전병이었던 경험을 살려 택시 기사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택시 운전 역시 만만치 않았다. 김 회장은 “택시 운전 초기 서울 지리를 잘 모르니 손님한테 길을 묻고 욕도 많이 먹었다”며 “그런데 그 욕도 밥값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했다.
그는 1983년 삼우운수를 시작으로 1993년 동일운수, 2003년 검단교통을 잇따라 인수하며 운수 업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져나갔다. 경영 철학은 단순했다. 바로 ‘사람이 중요하다’다. 그 철학은 무료 사내 식당 운영, 전 직원 야유회 개최, 직원 자녀 장학금 지급으로 구체화됐다. 김 회장은 “내가 과거에 잘 못 먹었으니 직원들 만큼은 식사비라도 덜 걱정하게 하고 싶었다”며 “또 내가 못 배웠으니 직원 자녀의 학비 부담이라도 줄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한때는 중고교생 자녀를 둔 직원에게 학비 전액을 지원했는데 지금은 무상교육으로 장학금 제도는 사실상 없어졌지만 그의 마음은 그대로다. 정년이 없는 회사 방침이 그 연장선이다. 실제로 동일운수와 검단교통에는 70세 이상 기사들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 그는 “80세가 넘은 나도 일을 하고 있으니 우리 직원들 역시 안전 운전만 가능하다면 나이 상관없이 계속 일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금 평균 수명은 100세를 향해 가고 있지만 직장인 평균 정년은 아직도 60대에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할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는 정년을 적용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요즘도 인천 지역의 택시·버스 기사들은 김 회장의 회사에서 모집 공고가 나기만을 기다린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 고향 발전과 사회 활동에도 매진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남원 운봉읍에 ‘아이키움재단’을 설립해 지역에서 출생한 신생아에게 1인당 500만 원씩 지급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 회장은 “현재까지 7명의 신생아에게 500만 원씩 지급했는데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어 이 사업을 하게 됐다”며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봉사 활동 등 사회적 사업에 힘을 보태면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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