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금융시장을 흔들던 중동의 지정학 갈등이 이틀 째 안정세를 유지하면서 뉴욕 증시도 큰 흐름을 보이지 않은 채 숨을 골랐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휴전은 유지됐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 주 이란과의 핵협상 재개 계획을 밝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금리 인하를 둘러싼 갈등은 격화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임 선정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다.
25일(현지 시간)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06.59포인트(-0.25%) 하락한 4만2982.43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0.02포인트(-0.00%) 하락한 6092.16으로 사실상 변동이 없었으며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61.02포인트(+0.31%) 상승한 1만9973.55에 장을 마감했다.
인공지능(AI) 관련 주식은 대체로 상승했다. 엔비디아는 4.33% 오른 149.43달러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AMD의 주가는 3.59% 상승했다. 알파벳은 2.34% 상승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의 주식도 각각 0.44%와 0.63% 올랐다. 이날 MS의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의 상승폭이 더욱 크면서 엔비디아는 다시 최대 시가총액 기업이 됐다. 테슬라의 주가는 3.79% 하락했다. 커런트자산관리의 최고투자전략가인 리아 베넷은 이날 시장이 크게 하락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며 “현재 시장은 AI이나 가상자산 등 장기적으로 자산 가격 상승에 긍정적인 구조적인 요인과 정책의 실책 가능성이라는 역풍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며 “적어도 오늘은 전자가 우세했다”고 평가했다.
유가는 4거래일 만에 처음으로 상승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장 대비 0.55달러(0.85%) 오른 배럴당 64.9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8월 인도분 가격은 전장 대비 0.54달러(0.80%) 높아진 배럴당 67.68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유가가 지난 이틀 동안 중동 긴장 완화로 6~7% 대의 급락세를 보인 후 낙폭 과대에 따른 상승이란 평가가 나온다.
파월 “전례없는 관세…금리 인하 신중해야” vs 트럼프 “차기 연준의장 후보 3~4명 추려”
파월 의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갈등은 이제 설전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해임 단계로 넘어갈 가능성이 짙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후 기자 회견에서 ‘차기 연준 의장 후보 인터뷰를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차기 의장으로) 선발할 세 명 또는 네 명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행히 그(파월)는 끔찍하다”고 말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의 금리 관망 기조(wait-and-see)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면서 조기 교체를 검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파월 의장은 금리 인하에 신중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전날 하원 정례 청문회에 이어 이날 상원 은행·주택·도시문제위원회의 반기 통화 정책 보고 청문회에 출석한 파월 의장은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보다 현재의 관세 정책은 규모나 범위가 더 크다는 지적했다. 그는 “현 상황이 매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최근 관세 인상과 같은 선례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과정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고, 그 영향이 클 수도 작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월 의장은 그러면서 “우리가 여기서 실수를 한다면,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관망(wait-and-see) 기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이 거세지고 교체 논의가 무르익을 수록 금융 시장의 변동성은 커질 수 있다. 앞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의 해임을 추진했을 당시 금융 시장에서는 국채금리가 치솟는 등 불안 심리가 확대된 바 있다.
연준 입장에서도 통화 정책을 수행하는 데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닉 티미라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금리를 급격히 인하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부를 수 있고 이 경우 연준의 신뢰가 떨어질 것”이라며 “반대로 관망 입장을 고수하다가 인플레이션보다 경제가 급격히 둔화될 경우 파월 의장의 입지가 약화될 수 있는 골칫거리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그러면서 “연준 의장에 대한 대통령의 이런 공격은 전례가 거의 없고 이는 연준이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고 “앞으로 몇 달 동안 정치적, 경제적 위험에 대해 균형을 맞추려는 파월 의장의 노력이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상호관세 유예 종료 앞두고 페덱스 “운송 수요 급감”
중동은 갈등 재발없이 휴전 상황을 이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다음 주 이란을 만난다”며 핵 문제를 두고 협상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이스라엘과 이란의 역사적 숙적 관계를 고려할 때 무력 충돌이 재발할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회견에서 자신의 중재로 휴전에 들어간 이스라엘과 이란이 조만간 무력 충돌을 재개할 수 있다고 내다보며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것(무력충돌)이 다시 재개될까. 언젠가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어쩌면 조만간 재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관세 정책이 또다시 시장 변동성 요인으로 등장할 조짐도 나타났다. 페덱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전쟁으로 인해 이번 분기에 1억7000만 달러의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5월 800달러 이하 소포에 대해서는 관세를 면제해주던 규정을 폐지하면서 운송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페덱스는 유럽과 동남아시아의 운송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지만 전체적인 매출 하락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이 여파로 페덱스의 주가는 3.27% 하락했으며 또다른 운송업체인 UPS의 주가도 1.24% 떨어졌다.
미국과 주요국의 무역협상은 아직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캐나다의 신임 수석 협상 대표인 커스틴 힐먼은 미국과 캐나다 관계자들이 이번 주 세 차례 만나 합의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캐나다는 미국이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연합(EU)이 미국으로부터 10% 기본 관세를 부과받을 경우 보복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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