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불을 비롯한 각종 재난이 늘어날수록 노약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더 많은 피해를 보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대형 산불 등은 특히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발생해 지역사회 인구 소멸 추세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재난 취약 집단 건강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재난 관련 피해를 겪을 경우 노년층의 21.4%, 빈곤층의 24.7%, 장애인층의 29.3%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으로 분류될 만큼 심각한 피해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은 재난을 겪은 일반 집단 대비 이들 사회적 약자들이 ‘고위험군’에 속할 확률이 최소 10%포인트 이상 높을 정도로 피해가 큰 상황이다.
실제 올봄 발생한 영남 대형 산불의 사망자 31명 중 29명이 60대 이상 고령층이었다. 60대 이상은 젊은 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동이 불편한 데다 재난 문자에 대한 대응도 느릴 수밖에 없어 산불과 같은 재난 발생 시 대처가 쉽지 않은 구조 탓이다.
각종 재난이 지역사회 인구 소멸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산불로 고통받고 있는 강원과 경북의 인구밀도는 2023년 기준 ㎢당 각각 91명·137명으로 나란히 끝에서 1·2위를 기록 중이다. 특히 이번 산불로 피해로 본 고령층 일부는 ‘산불 트라우마’로 자식들이 살고 있는 대도시 지역으로의 이사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연구재단 또한 ‘느린 재난 앞에서 선 노인’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2022년 동해안 산불에 따라 특별재난지역에 포함된 지역 중 강원도 삼척시와 동해시 일부 지역의 고령화율은 34.3~46.8%에 달했으며 이들 지역 노인층이 시외로 이동(이사)하는 경향이 관찰됐다”며 “동해안 산불로 2022년 강릉시 인구는 1년 전 대비 20%가, 동해시 인구는 13%가 각각 감소했다”고 밝혔다.
고령화와 인구 소멸에 대비한 행정 체계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인구밀도가 낮은 곳은 행정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재난 안전 분야 대응력도 자연스레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보다 강력한 경보 체제나 대처 방안 마련과 같은 지역 맞춤형 재난 안전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인구 소멸 지역의 인구 유출도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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