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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과 끝이 같은 마음으로 난민·이주민과 함께 할 것”[김정욱의 공존]

■국내 난민·이주민과 33년 함께 한 마리안나 수녀

1992년 한국에 첫 발…소외 이웃에 손길

인천서 외국인 노동자 도우며 전환점 맞아

결혼이주여성 지원하며 삶의 동반자 역할

강원·인천·광주·대구 등 전국 각지서 헌신

제18회 세계인의날 행사서 대통령상 수상

마리안나 수녀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난민과 이주민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임을 강조하고 있다.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이던 스비에르제브스카 마리안나 수녀는 1992년 서른한 살의 나이에 낯선 땅 한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폴란드 출신인 그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여성 직장인 기숙사에서 첫 사도직을 시작했다. 그저 배운다는 마음 하나로 한국사회에 뛰어들었다. 마리안나 수녀는 “여성 직장인 기숙사에서 청소와 설거지 등을 하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열심히 배웠다”며 “한국은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나라였지만 사람들이 친절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폴란드 출신…서른한 살에 낯선 땅 한국서 사도직 시작

이후 전남 영광으로 옮겨간 그는 조손·한부모 가정 아동들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했다. 또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초동본당의 소년소녀가장후원회 장학금 연계를 통해 아이들의 배고픔과 학습 환경을 개선하는 데 헌신했다. 영광을 떠난 후에는 강원도 정선에 둥지를 틀었다. 마리안나 수녀는 “정선 여성긴급 전화 1366과 협력해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긴급 대피 활동을 지원했다”며 “여성 인권과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쉼터이자 생존의 버팀목이 되겠다는 각오로 임했다”고 말했다.

1997년 천주교 인천교구 이주노동상담소로 옮긴 마리안나 수녀는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한국 사회가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외국인 노동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제도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이다. 노동권, 거주권, 의료 혜택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고립된 환경 속에서 차별과 학대에 시달렸다. 이때부터 그는 이주민들이 한국사회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결심했다. 그는 “당시 만난 외국인 노동자들은 출신국가, 언어, 문화 등 모든 게 달랐다"면서 "정말 각양각색이었지만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처음에는 먹거리와 한국사회 생활 적응 등 단순 지원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삶을 함께 하는 동반자가 돼 갔다.

마리안나(뒷줄 맨 오른쪽) 수녀와 이주민들이 한국생활 적응을 배우는 모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가톨릭근로자회관


마리안나 수녀의 임지는 인천에서 광주광역시로 또 바뀌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필리핀 결혼이주여성을 중심으로 한 신앙공동체를 구성하고 문화적 충돌 속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가족과 같은 공간을 만들어냈다. 당시 국제결혼 여성들이 겪는 문제는 실로 다양했다. 그는 “언어 소통의 어려움, 시댁과의 갈등, 남편의 폭력, 자녀 교육의 고충 등 결혼이주여성들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며 “결혼이주여성들과 함께 생활하며 상담은 물론 의료와 법률 지원까지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주노동자·결혼이주여성 이어 난민 지원 활동에 매진

2019년부터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난민 지원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이곳에서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양한 국적과 사연을 지닌 난민들을 맞이하고, 한국 생활에 필요한 실질적 도움을 제공한다. 그가 만난 이들의 사연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으면서도 현실적이었다.

“어느날 학생비자로 한국어를 배우러 왔던 외국인 여성이 찾아왔습니다. 그 여성에게는 함께 온 남자친구도 있었지만 자국 내 다른 부족이라는 이유로 집안에서 교제를 극구 반대했죠.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이도 낳았는데 집안의 반대가 심해 귀국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급기야 남자친구가 떠나면서 아이를 홀로 키우게 되자 난민 신청을 했죠. 보육비 지원과 함께 정신적 회복을 위해 다양한 기관의 도움을 받도록 했습니다.”

심장질환을 앓던 아프리카 여성도 잊지 못하는 사례다. 난민 불인정 판정을 받은 그 여성은 급성 심장 이상으로 긴급 수술이 필요했지만 의료비가 없어 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마리안나 수녀를 중심으로 대구 가톨릭근로자회관은 한 신문사와 함께 모금운동을 벌였고, 병원에 직접 보증을 서 수술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심장 질환을 앓던 여성은 무사히 수술을 마쳤고, 지금도 마리안나 수녀를 생명의 은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수술을 받았던 여성이 ‘이렇게 살고 싶어서 한국에 온 게 아니다. 나도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며 “그 말이 가슴에 깊이 박혔고, 이들을 위해 뭔가를 더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회고했다.

대구에서 난민과 이주민 지원 활동을 벌이는 가톨릭근로자회관 관계자들. 왼쪽부터 이관홍 보오로 신부, 마리안나 수녀, 이레나씨, 류장미씨.




마리안나 수녀의 활동에는 신앙적 철학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그는 가톨릭이 가진 ‘보편성’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했고, 그것은 특정 민족이나 종교, 국적을 넘어 인간 그 자체를 향한 존중과 연대다. 마리안나 수녀는 “신앙은 울타리를 만들기 위한 게 아니라 울타리를 넘어서기 위한 힘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는 내 가치관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으려 하고, 다양한 환경과 문화를 이해하려는 시도, 그게 내 사역의 출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순한 물질적 지원이 아닌 자립을 위한 도움의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병원 예약 하나조차 스스로 하기 어려운 이주민들에게 그 절차와 방법을 가르쳐 주고, 행정적 언어 장벽을 넘을 수 있는 통역 지원까지 마련한다. 지속 가능한 도움은 그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한국사회에서 당당히 살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민·이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편견 갖지 않는 시선”

지난 달 20일 경기 과천시에서 법무부 주최로 열린 ‘제18회 세계인의 날’ 기념식에서 마리안나 수녀는 대통령상(올해 이민자상)을 수상했다. 이주민의 한국 사회 적응·정착을 위해 헌신한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뜻밖의 영예에 놀라움과 감사의 마음을 동시에 느낀 그는 “이건 나 개인의 수상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 전체의 헌신에 대한 상징이라고 생각한다”며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모두 함께 했기 때문에 이주민과 난민들을 도울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래서 더욱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다”며 “더 겸손하고 더 정직하게 앞으로 걸어가겠다”는 다짐도 전했다.

대통령상 수상 이후 축하 메시지가 빗발쳤다. 그러나 마리안나 수녀는 그 축하는 혼자가 아닌 함께 활동하는 모두가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수상으로 그는 앞으로의 사역에 있어 새로운 책임과 사명감을 느끼며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도 다시 다지게 됐다고 한다. 마리안나 수녀는 “처음과 끝을 다르지 않게 한결같이 살고 싶다”며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그 마음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를 돕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마리안나 수녀는 한국 정부가 이주민과 난민 문제에 대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여전하다고 말한다. 그는 “난민 자녀들이 학교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준비할 때 겪는 절차적 장벽은 여전히 높다”며 “이들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리안나 수녀가 5월 20일 열린 제18회 세계인의 날 행사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가톨릭근로자회관


그는 난민과 이주민 문제에 있어 종교계와 민간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들에게 다가가 가장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것은 종교계와 민간단체이기 때문이다. 마리안나 수녀는 “난민을 돕는 것엔 찬성하면서 내 아이가 난민 자녀와 함께 학교를 다니는 건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이런 것도 역시 차별인데 종교계와 민간이 나서서 편견을 줄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마리안나 수녀는 일반 시민들이 난민과 이주민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실천적인 행동으로 ‘편견을 갖지 않는 시선’을 꼽는다. 난민이나 이주민을 특정한 프레임으로 보지 않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가장 큰 도움이라는 것이다. 그는 “난민도, 이주민도, 우리 모두 존중받고 싶어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그런 존중이 시작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마리안나 수녀는 매일 이른 아침 가톨릭근로자회관 문을 열고 작은 방에서 사람들을 기다린다. 그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서 연대와 희망을 쌓아 올리면서 한국사회에서 인류애를 실천하고 있다.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수가 25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다인종 다문화 국가로 진입한 한국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의 삶을 조명하며 공존을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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