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일 전격적으로 상법 개정안에 ‘3% 룰(감사위원 선출 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을 담기로 합의한 것은 대통령실과 호응한 더불어민주당의 전략 수정과 최악을 피하려는 국민의힘·경제계의 이해가 맞물린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여당으로 변신한 민주당의 상법 개정 드라이브에 경제계는 현실적으로 저지는 어렵다고 보고 독소 조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국민의힘도 ‘전면 반대’에서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협상장으로 돌아오면서 협의의 장이 열렸다.
시장의 가장 큰 관심은 ‘3% 룰’이 포함될지 여부였다. 전날 여당은 3% 룰을 양보할 가능성을 강하게 시시했다. 이 때문에 3일 본회의 처리가 유력한 이번 개정안에는 3% 룰이 빠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이재명 대통령이 여당에 상법 개정에 힘을 실어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를 파악한 국민의힘과 경제계는 최악을 막기 위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유예하는 방향으로 전선을 바꿨다. 3% 룰은 대주주가 감사위원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게 해 기업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장하려는 목적이지만 재계는 경영권 침탈을 꾀하는 외부 투기 세력에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이번에 합의된 개정안의 시행 시기는 조금씩 차이가 난다. 주주 충실 의무 확대는 공포 후 즉시 시행, 전자 주주총회는 2027년 1월 1일부터다. 3% 룰 등 나머지 조항들은 1년간의 유예기간을 뒀다.
민주당은 올 4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됐던 상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주주 충실 의무, 전자 주주총회 도입)에 △3% 룰 △집중투표제 강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 더욱 강력한 조항을 더한 새로운 개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야당과 경제계는 3% 룰이 집중투표제와 맞물려 더 강한 파급력을 갖는 것을 우려했다. 집중투표제는 각 주주가 보유한 의결권을 특정 후보자에게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사 후보가 여럿일 때 지금까지는 한 명의 주주가 1표를 행사했지만 집중투표제에서는 각 후보마다 1표씩을 행사해 영향력을 늘릴 수 있다. 예를 들어 A사의 주식 10주를 보유한 소액주주의 경우 이사 5명을 선출하는 주주총회에서 기존에는 총 10표의 투표권만을 가졌다. 하지만 집중투표제에서는 5명에 대해 10표씩 총 50표를 보유하게 되고, 이를 특정 후보 한 명에게 몰아주는 식으로 의결권을 극대화할 수 있다.
헤지펀드와 같은 외국계 투기 세력이 두 제도를 함께 활용할 경우 경영권에 폭넓게 개입할 여지를 주게 된다는 관측이 나왔다. 소규모 지분만으로 3% 룰을 통해 이사인 감사위원을 확보하고, 집중투표제로 이사를 추가 확보할 수 있게 돼서다. 여기에 3% 룰의 영향을 받는 감사위원 확대까지 더해지면 외부 세력이 자본을 쪼개 공격하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이사회 내에 3~4명의 이사를 확보할 수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외국계 투기성 펀드나 경영권 공격 목적의 주주들이 연대할 경우 소수 지분으로 감사위원회를 장악하거나 내부 정보를 활용한 ‘사전 경영 간섭’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런 이유로 경제계는 그나마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확대를 막아 세운 게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경제계는 이번 합의 내용을 확인한 후 대응 방안을 정리해 여당에 전달할 새로운 대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이런 움직임이 결국 원하는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의심도 나온다. 경제계의 의견을 최대한 들었고 야당과도 합의 처리했다는 모습을 연출해 국민 여론을 우호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법안 추진 과정을 고려하면 결국 답을 정해놓고 요식으로 처리하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핵심 쟁점으로 시선이 분산됐지만 독소 조항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는 지적 또한 여전하다. 특히 이사의 충실 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조항은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처벌 대상으로 둔갑시킬 우려가 있다. 장기적으로 회사를 위해 내린 투자 결정을 두고 소액주주들이 배임죄를 언급하면서 소송을 남발할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대표이사 출신인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회사를 위한 임무에 위배한 행위’를 했을 때만 배임죄로 처벌하도록 하는 ‘기업 배임죄 특례법(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고 의원은 “기업 경제활동의 자율성과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 시행 후 보완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상법상 특별배임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고 형법상 배임죄와 충돌한다는 우려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며 “하지만 기존 판례에서 이 같은 우려를 잘 구별해내고 있는 만큼 추후 보완 입법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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