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뇌 노화를 촉진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 세계적 감염병 상황이 인간의 뇌 건강에 미친 영향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첫 대규모 분석이다.
영국 노팅엄대학교 스타마티오스 소티로풀로스 교수 연구팀은 22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한 사람들이 팬데믹 이전에만 뇌 촬영을 한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뇌 노화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영국 바이오뱅크에 등록된 건강한 성인 약 1000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팬데믹 전후 두 차례 촬영한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들은 기계학습(머신러닝) 기반 모델을 활용해 뇌 나이를 예측했다. 이 모델은 건강한 성인 1만5334명의 MRI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돼, 개인의 실제 나이에 비해 뇌가 얼마나 더 젊거나 늙어 보이는지를 평가한다.
참가자 중 432명은 팬데믹 전과 후 각각 1회씩, 564명은 팬데믹 이전에만 두 차례 촬영했다. 촬영 간격은 모두 2년으로 동일하게 설정됐다. 분석 결과, 팬데믹 이후 뇌를 촬영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두 번째 촬영 시점에서 평균 5.5개월 더 많은 뇌 나이를 보였다. 이 같은 뇌 노화는 코로나19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나타났다.
특히 남성, 낮은 소득과 교육 수준, 실업 상태, 건강 취약성 등 사회경제적 위험 요인이 있는 참가자일수록 뇌 노화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의 인지 기능 변화도 함께 살폈다. 정보 처리 속도, 인지 유연성 등 10가지 항목에 대한 테스트 결과, 인지 능력 저하는 코로나19에 실제 감염된 사람들에게서만 관찰됐다. 감염되지 않은 이들의 경우 뇌 노화 신호는 있었지만, 즉각적인 인지 저하로 이어지진 않았다. 다만 연구진은 이 같은 뇌 변화가 되돌릴 수 있는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소티로풀로스 교수는 "감염 이력이 없는 사람들에서 뇌 노화 가속이 나타난 것은 예상 밖의 결과였다"며 "팬데믹 기간 동안의 사회적 고립, 불확실성, 스트레스가 뇌 건강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다만 이번 연구가 뇌 변화의 지속 기간이나 다른 국가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해선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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