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란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이다. 이러한 꿈의 내용을 분석하고 정신치료에 활용하여 임상적(clinical)인 효과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꿈 분석을 통한 치료 효과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한다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꿈의 내용분석과 꿈치료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꿈의 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살아있는 사람의 뇌에 대한 관찰이 가능하게 되자, 꿈에 대한 또 다른 비밀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 비밀의 문을 열었던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독일의 정신과 의사 한스 베르거(Hans Berger)다.
1892년, 젊은 베르거는 말에서 떨어져 길바닥에 쳐박히는 사고를 당한다. 그는 회상했다.
‘19세 대학생이던 나는 뷔르츠부르크에서 군사 훈련을 받다가 큰 사고를 당해 거의 죽을 뻔했다. 나는 가운데가 낮고 양쪽 가장자리가 높은 우묵한 길가에서 말을 타고 가다가 행군하는 대열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포의 바퀴가 곧바로 내 몸을 깔아뭉갤 상황이었다. 말 여섯 마리가 끄는 포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멈춰섰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죽음을 모면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버지로부터 잘 지내느냐는 문안 전보를 받았다.’
그는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신경과학(neuroscience)과 꿈의 생물학(a biology of dreaming)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베르거는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누가 자신에게 그런식으로 안부를 물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다.
‘나와 형제애가 유난히 깊었던 큰 누나가 갑자기 부모님에게 내가 불운을 맞은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극한의 위험이 닥치고 확실한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 내가 발신자가 되고 나와 특별히 가깝던 누나가 수신자가 되어 텔레파시(telepathy)를 실행했을 것이다.’
나중에 정신과의사가 된 베르거는 이것이 텔레파시(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현상)의 증거라 여겼다. 어느 날 그는 텔레파시가 어떤 ‘심령에너지’의 물리적 전달에 근거한다면, 이를 측정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1924년 그는 이 가설을 검증해보기로 결심하고 머리피부 안쪽에 두 개의 전극을 넣고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기활동을 기록했다. 하나는 머리 앞쪽, 다른 하나는 머리 뒤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극에는 전기활동이 포착되었다. 하지만 이를 텔레파시의 근거로 내세우기는 너무 미약했다.
그러나 베르거는 인간의 뇌에서 뇌파(brain wave)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뇌파란 뇌가 활동함에 따라서 뇌의 신경세포가 만들어 내는 전류를 말한다. 1929년, 마침내 그는 뇌파를 증폭하여 기록하는 뇌전도(EEG, Electroencephaleogram)를 이용해서 환자의 머리 표면으로부터 뇌파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이 뇌파의 기록을 보면, 자고 있을 때와 깨어 있을 때, 뇌의 신경활동이 확실히 다르다. 깨어 있을 때의 뇌파는 주파수(초당 진동수)가 높고, 진폭(진동의 중심으로부터 최대로 움직인 거리)은 낮다. 이에 반해서 보통 잘 때의 뇌는 저주파이고 고진폭의 뇌파를 특징으로 하며, 신경활동이 상당히 감소한다. 이 뇌파는 머리의 표면에서 측정가능할 뿐만아니라 미약하게나마 외부로도 전달된다.
이 뇌전도(EEG)는 임상신경학 분야를 비롯한 수면과 꿈 과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이것은 간질 환자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의 뇌에서 일어나는 역동적 활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르거와 연구자들은 연구의 제약때문에 깊은 수면 후에 일어나는 많은 뇌 활동의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 베르거의 실험으로부터 20년 이상이 지나고 나서야 수면 중 꿈 꾸는 뇌의 극적인 변화에 대한 관찰이 객관적을 이루어지게 된다.
한편, 텔레파시의 존재에 대하여 심리학자 융은 확신을 가졌으며, 꿈의 내용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가 텔레파시라고 분명히 믿었다. 프로이트도 나중에 텔레파시적 꿈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이후 심리학자나 꿈 과학자들이 텔레파시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레 있었지만, 현재까지도 과학적인 확실한 증거로 뒷받침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