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한미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마무리된 것이라고 보기에는 아직은 좀 성급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15%로 인하하기로 했고, 한국은 투자 및 에너지 구매 등 총 4500억 달러 규모의 반대급부를 미국에 제공하기로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역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은 “현재 상황은 환자로 비유하면 이제 막 수술이 끝난 상태”라며 “앞으로 다양한 이슈가 있을 텐데 우리가 다치지 않도록 함께 잘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과 최 회장은 4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만나 최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을 비롯한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최 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관세 문제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잘 풀어주셔서 상당히 다행”이라면서도 “디테일을 조금 더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김 장관은 “관세 협상이 우리 기업계의 주요한 숙제였는데 큰 불확실성 하나를 완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이제 또 시작”이라고 회답했다. 그러면서 김 장관은 “산업 재편 문제나 인공지능(AI) 혁명 등 여러 이슈들이 우리 기업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이 최 회장을 만난 것은 이번이 취임 이후 처음이다. 김 장관은 최 회장과 만난 뒤에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도 만나 관세 협상 결과를 공유했다.
최 회장이 김 장관과의 첫 만남 자리에서 디테일한 후속 조치를 당부한 것은 아직 관세 협상 내용이 총론만 짜였을 뿐 세부 사항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투자 내용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언제든 다시 관세 인상이라는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약정된 기간 동안 투자 한도를 채울 때까지 협상은 계속 이어진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정부는 투자 프로그램의 각론을 채우기 위한 실무 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국내 조선 3사는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를 논의하기 위한 대화체를 구성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투자 프로그램 내용을 채우기 위해 한미 양측 모두 내부적으로 체계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며 “해당 금액을 한 번에 투자할 수는 없으니 순차적으로 가능한 프로젝트를 찾는 작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의 일차적인 윤곽은 이달 중하순 중으로 조율되고 있는 한미정상회담 전에 잡힐 것으로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처음 만나는 자리인 만큼 확실한 선물 보따리를 가져가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그동안 한미 양측이 협상 내용에 대해 조금 말이 달랐던 부분이 있지 않았느냐”며 “결국 정상들이 만나기 전 이런 세부적인 사항을 다듬는 실무 협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원장은 “3500억 달러 전체는 아니더라도 유의미한 규모의 기업 직접 투자도 정상회담을 계기로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를 위한 의견 수렴 작업이 진행 중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새로운 통상 환경 속에서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대책도 마련할 방침이다. 김 장관은 “수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 해도 15%의 관세는 중소 수출 기업의 수익성에는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며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 등 관세 후속 대응을 긴밀히 집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김 장관은 “이번 협상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어떤 외풍이 닥치더라도 흔들리지 않도록 근원적인 경쟁력을 압도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것”이라며 “시장과 기술을 무기로 자국 우선주의 경쟁이 확산되는 뉴노멀 시대에 맞춰 중장기 산업경쟁력 확보 전략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김 장관은 재계가 강한 우려를 표해온 노동조합법과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단기적으로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합리적인 상생 노사 문화가 정착하고 자본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그럼에도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과 일자리 창출에 부담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법이 국회를 통과해도 6개월~1년의 준비 시간이 주어지니 이를 활용해 하위 법령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기업과 충분히 소통하겠다는 이야기다. 김 장관은 이를 위해 산업부 산하에 경재계 이슈를 전담할 ‘기업 환경팀’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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