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군 당국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 연합훈련 일정 연기를 발표한 가운데 미국 정부가 북한을 향해 본격적인 대화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미 국무부는 7일 “김여정(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최근 담화를 관심을 갖고 주목하고 있다”면서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 목표 달성을 위한 북한과의 협상에 관여할 의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김 부부장이 “새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다른 접촉 출로를 모색하는 것이 좋다”며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전제로 한 북미 대화 가능성을 내비친 데 대해 미국이 호응한 것이나 다름없다.
북미 간 대화 탐색전이 벌어지는데 한미 안보 결속에는 이상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와 한미연합사령부는 이날 한미 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 일정을 공표하면서 20여 건의 야외기동훈련이 9월로 연기된다고 밝혔다. 합참은 폭염 탓으로 돌렸지만 석연치 않다. 앞서 김 부부장이 한미 동맹을 비난한 직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연합훈련 조정을 건의하겠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훈련 연기를 요청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UFS 발표문에서는 ‘북한’이라는 단어가 아예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주한미군의 ‘대북 억제’ 역할에서 발을 빼려는 와중에 우리 정부까지 나서서 한미 연합 방위 태세를 흐트러뜨린다면 우리나라 방위 역량은 물론 한미 동맹까지 타격을 입을 우려가 크다. 북한에 휘둘리느라 한미 안보 결속이 느슨해진 사이 북미가 한국을 배제한 채 북핵 동결과 대북 제재 완화를 주고받는 ‘직거래’에 나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달 25일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안보 문제가 핵심 의제가 될 것이다. 미국의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에 적정 수준에서 접점을 찾아 자강(自强) 능력을 키우고 안보 협력을 고도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맹 현대화’라는 명분 아래 철통 같은 한미 동맹과 한반도 안보 전략에 빈틈이 벌어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급변하는 글로벌 안보 질서 속에서 자강과 동맹의 공고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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