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첫 휴가를 마친 이재명 대통령이 숨 가쁜 외교 일정에 돌입한다. 11일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의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이달 23·25일에 각각 한일·한미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높다. 그 뒤로도 9월에는 유엔 총회에 참석하고 10월에는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다자외교 무대를 총지휘한다. 미국의 패권 경쟁국인 중국의 9월 전승절 기념행사는 이 대통령에게 또 하나의 외교적 시험대다. 이달 1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분수령으로 미국과 북한 관계, 한러 관계 등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요동치는데 우리 외교 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4강인 미·중·일·러의 한국 대사 자리는 모두 비어 있다. 지난달 이 대통령이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특임 공관장 30여 명을 일괄 귀임시키면서 한반도 주변 4강 대사가 한꺼번에 공석이 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우리의 동맹인 주미 대사 공석의 장기화는 심각한 문제다. 미국도 정권 교체 후 주한미국 대사를 임명하지 않고 있어 양국 모두 대리대사 체제에서 첫 정상회담을 치를 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과 방위비 증액 등 ‘안보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이 크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9일 미국이 무역 협상 당시 한국에 국방 지출 50% 증액을 요구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이 밖에 주한미군사령관이 안보 위협 우려를 제기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반도체 100% 관세 문제 등 국익과 안보 관점에서 중대한 외교 안보 현안이 산적해 있다.
미국 정부 최고위급과 접촉해 우리 입장을 전달하고 중요 정보를 수집해야 할 상황에서 주미 대사의 공백은 뼈아픈 부분이다. 급변하는 경제·안보 질서에서 생존을 건 글로벌 외교전이 치열하다. 이 와중에 4강 대사의 공백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대외 신뢰가 실추되고 국익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힐 수 있다. 외교 고립을 막고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전문성과 자질, 외교력이 철저히 검증된 주요국 대사를 신속하게 임명해 외교 공백을 종식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외교 라인의 정상화 없이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가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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