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3일 공시가격 현실화율 인상 카드를 꺼내 들은 것은 6·27 대책 이후에도 꿈틀거리는 서울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해서다. 아울러 현실화율 상향으로 부동산 보유세 인상 효과를 거둬 세수 부족도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만일 문재인 정부 때의 현실화율 계획을 고수해 현실화율을 최대 90%로 설정할 경우 서울 용산구 한남더힐 등 고급 주택단지의 보유세 부담은 지금보다 50%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6·27 대책 발표 후 6주가 지나며 서울 아파트 값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0.14% 올라 상승 폭 흐름이 6주 만에 상승 반전했다. 강남 3구와 마용성 등 기존 상승 지역 뿐 아니라 부산 등 대출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지방의 초고가 주택으로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부동산 전문가들마저 대출규제의 정책 효과가 길어야 1년 안팎일 것으로 전망하면서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현실화율 조정 착수는 6·27 대출 규제의 정책 효과가 떨어지기 전 보유세 강화 시그널을 보내 시장에 매물이 나오도록 유도하면서 공급대책 발표를 통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출규제로 잠겨있는 부동산 시장에 매물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라도 보유세 인상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3년 연속 이어진 세수 결손 역시 ‘사실상 증세’인 현실화율 인상의 배경으로 꼽힌다. 여당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에서 부동산 보유세 인상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실화율 인상은 세법 개정 없이 시행 계획 개정만으로 부동산 세수를 늘릴 수 있다.
관건은 현실화율을 어느 정도로 인상하느냐에 달려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잠정 중단했던 문재인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따른다면 아파트 기준 2026년 현실화율은 80.9%, 2030년 90%가 돼 올해 69.0%에서 각각 10%포인트, 20%포인트 이상 뛰어오른다. 집값 인상시기에 공시가격마저 상승한다면 보유세는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한다.
실제 현실화율이 90%에 도달하면 서울 용산구 한남더힐,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 등 고급 단지의 보유세 부담은 현재보다 50%나 상승하게 된다. 서울경제신문이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에게 의뢰한 결과 한남더힐 전용 233.3㎡의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는 올해 5941만 원에서 8736만 원까지 47%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올해 시세를 기준으로 공시가격 현실화율만 90%를 적용했을 경우 수치이다. 종부세는 1가구 1주택 기준으로 공정시장가액비율 60%, 농어촌특별세 등 각종 조세 부담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공시가 현실화율을 단계별로 살펴보면 시세의 69%를 적용한 올해 보유세는 5941만 원인데 이를 75%로 확대하면 7173만 원으로 늘어난다. 공시가율이 시세의 80%에 도달하면 7699만 원, 85%에 이르면 8224만 원까지 급증하게 된다.
서울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 역시 공시가 현실화율 90%를 적용하면 보유세 부담이 1300만 원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됐다.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112.96㎡의 올해 보유세는 2841만 원가량 된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75%로 올리면 보유세는 3478만 원까지 늘고 80%로 적용하면 보유세는 3763만 원까지 증가한다. 또 현실화율을 85%로 적용하면 보유세가 4089만 원에 도달하고 현실화율 90%를 달성하면 보유세는 4160만 원이 된다.
강남 3구의 다른 고가 아파트 역시 시세 변동률을 고정한 상태에서 공시가격 현실화율만 90%로 인상해도 보유세 부담이 급증하는 건 마찬가지다. 서초구 반포자이 84㎡의 경우 올해 보유세가 1275만 원 수준이었는데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을 90%로 적용하면 보유세는 1845만 원까지 늘어난다.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전용 82㎡ 역시 보유세가 올해 867만 원에서 1260만 원으로 45% 오르고 강남구 은마아파트 전용 84㎡도 보유세가 올해 704만 원에서 1006만 원으로 43% 증가한다.
우 위원은 “서울 강남 등 주요 지역의 경우 시세 변동을 반영하지 않고 공시가격 현실화율만 90% 적용했을 경우에도 보유세 부담이 40~50% 증가하게 된다”며 “시세 변동률을 반영하게 되면 보유세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시가격 인상이 고공행진하는 분양가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표준지 공시가격이 택지비 산정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공시가격 인상은 인건비 및 주요 원부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공사비 증가에 최근 3.3㎡ 당 1억 원을 찍은 일반분양가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이에 현실화율 90% 달성 시점을 로드맵에서 목표한 2030년에서 2035년으로 늦춰 연간 인상 폭을 줄이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문재인 정부 당시 강남 3구뿐 아니라 마용성, 부산 해운대, 대구 수성, 세종 등 지방까지 보유세가 급등하며 정권심판론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10월 이후 열리는 중앙부동산공시가격위원회에서 내년도 현실화율을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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