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22일 첫 경제성장전략을 내놨지만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 줄 규제 완화책은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모두의 성장’과 ‘공정한 성장’이라는 기조 아래 기업의 부담을 키우는 조치들이 담기면서 정작 성장의 주체인 기업은 논의에서 뒷전으로 밀렸다.
정부는 ‘공정한 성장’ 분야에 4개 페이지를 할애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들을 대거 담았다.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 의무·책임 강화부터 동반성장지수의 금융권 평가 확대 적용, 산재 발생 기업에 대한 대출 규제 등이 대표적이다. 안전보건 분야에서는 반복적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과징금 부과, 영업정지 요청, 공공입찰 참가 제한 등 제재가 강화된다. 현재는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동시에 2명이 사망할 때에만 입찰이 제한되지만 앞으로는 연간 다수의 사망자가 생겨도 제한을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이 엄격해 진다. 또 중대재해 발생시 공공계약 입찰 평가에서 감점을 주는 항목도 신설하기로 했다. 중견 제조기업의 한 임원은 “안전과 상생은 기업이 지켜야 할 가치이지만 제도화는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적용돼야 한다”며 “기업을 옥죄는 조치들이 한꺼번에 도입되면 경영 부담이 커지고 투자가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총 53쪽에 달하는 성장전략에서 기업규제 완화를 별도로 다룬 분량은 고작 1쪽 반에 불과했다. 재계가 주목했던 이사의 충실의무 가이드라인 제정은 “앞으로 마련하겠다”는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 7월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가 대상이 회사 뿐만 아니라 주주까지 확대됐지만 정부나 감독당국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아 기업들은 어떤 의사 결정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지 모른 채 불확실성과 부담을 떠안고 있다.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하는 배임죄의 개선 논의도 경제형벌 합리화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과제를 마련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흐름은 기업을 경제성장의 주체로 강조해왔던 이 대통령의 인식과도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5대그룹 총수·경제단체 간담회에서 "경제의 핵심은 기업이며, 정부가 할 일은 기업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협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불합리한 규제, 행정 편의를 위한 규제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겠다”고도 했지만 실제 발표된 전략은 이런 기조를 뒷받침하기엔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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