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나는 어릴 때 갑자기 키 크면서 많이 아팠다고 했다. 무릎 뒤쪽이 특히 그랬다. 어린 아이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생기는 통증, 바로 그 성장통을 심하게 겪은 것이다.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유일한 대한민국 신인으로서 윤이나는 또 다른 성장의 아픔을 겪고 있다. 컷 통과를 하지 못한 대회도 많고 아직 10위 이내 성적도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 디펜딩 챔피언으로 출전한 윤이나를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윤이나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최대한 대화 때 나눈 그의 어투를 그대로 썼다.
◆ 새로운 무대, 새로운 경험 그리고 새로운 성장
윤이나는 올해 자신의 키워드를 성장으로 잡았다고 했다. 매 대회 성장하는 게 목표였고 결과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급함을 갖기 보다는 조금씩 ‘성장하는 윤이나’를 큰 그림으로 그렸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어렵지 않았는지?
“이제 반년을 뛰었지만 환경적으로는 정말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대회장 이동을 자동차가 아니고 비행기로 해야 하고 먹는 것도 그렇고 매 대회마다 잔디가 달랐던 것도 그렇고 확실히 적응에 대한 중요함이 (국내보다) 더 컸어요. 저한테 필요한 건 ‘조금의 더 시간’인 것 같아요. 아직 미국에서 경기하는 것이 이제 반이 됐고 제 선수로의 경험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조금 더 배움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속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것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사실 기대했던 것만큼 성적이 나지 않는 게 사실이고 하지만 저는 조급하지 않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최선을 다해서 매일매일 보내다 보면 언젠가 다시 잘 맞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고요. 잘 안 되는 건 복합적인 부분인 것 같은데, 뭐가 딱히 안 된다고 하기 보다는 경기를 풀어나가는 데 조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 같아요. 큰 게 아니라 작은 것들이 톱니바퀴가 안 맞는 느낌인데, 계속해서 많은 경험을 하다보면 머지않아 맞아 나갈 것 같습니다.”
-많은 선수들을 새로 만났을 텐데, 가장 인상적인 선수를 꼽는다면?
“솔직하게 한국에서 보다 더 많이 친구를 사귀었어요. 일본 선수들이랑 대부분 친하고. 거의 다 친해요. (다케다) 리오와도 친하고 (야마시타) 미유도 친하고, 이와이 자매와도 잘 지내고 있고요. 미유 선수와는 Q스쿨 때도 같이 쳤는데, 보기를 잘 안 해요. 그린을 놓쳐도 파로 잘 막고. 미유 선수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숏 게임도 저랑 너무 다른 플레이를 하고. (줄리아 로페즈) 라미네즈 선수는 정말 엄청 멀리 쳐요. Q 스쿨에서 처음 만나서 친하게 지내는데, 그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저보다 20~30m 멀리 나갈 때도 있고. (정말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되묻자) 정말 마음먹고 치면 멀리 치더라고요.”
-한국 선수로는 유일한 신인인데, 외롭지는 않나?
“좀 외롭긴 해요. 한국에서 많이 넘어와서 같이 ‘으쌰으쌰’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으면 서로 더 시너지가 날 텐데, 또 그걸 보면서 뒤따라 올 선수들도 더 힘을 얻을 거고. 지금 일본이 약간 그런 분위기인 거 같아요. 많이 LPGA 나가서 경험하기를 협회에서 응원해 주는 것 같고. 그리고 골프 팬들도 일본에서 많이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선수들도 나가는 선택을 좀 쉽게 하는 것 같아요. 한국은 뭘 많이 감안하고 선택하는 느낌? 근데 일본은 갔다고 와도 되지. 약간 이런 느낌인 건지 모르겠어요. 근데 나가서 잘 하고. 그리고 또 그걸 보면서 옆에서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또 다시 나가고. 내년에도 많이 온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요즘 많이 나가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응원하는 팬들이 적어 썰렁한 기분이 들지 않나?
“허전하죠. 좀 허전하긴 해요. 한국에서는 많은 팬들이 오셔서 응원해주고 덕분에 웃고. 그러다 보면 저도 신나거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질 정도로 많이 신이 나요. 미국에서는 대회를 하다가 경기가 잘 안 풀리면 많이 뒤처져서 걷거든요. 1번 홀에서 그 생각이 많이 나요. 이름 부를 때. ‘윤이나 선수’라고 이야기하면, 한국에서는 항상 구호를 외치잖아요. ‘윤이나 빛이나 화이팅 하고’ 미국은 그게 없으니까. 그게 많이 생각나고. 그래도 간간이 오세요. 한국에서도 오고. 현지에 사시는 한국 분들도 오시고. 그럴 때는 좀 힘이 되죠. 한국만큼은 아니긴 하지만.”
-윤이나에게 팬은 어떤 존재인가? 지금 더 절실히 느끼고 있을 것 같은데.
“그렇죠. 항상 느끼죠. (미국으로) 나가고 나서는 더 느끼는 것 같아요. 그 왜 사람이 잃어봐야 소중함을 안다는 이야기 있잖아요. 물론 작년에도 그렇고 제가 지금까지 골프 선수를 하고 있는 게, 팬들 덕분이니까. 잊지는 않지만 그래도 있다가 없으니까 대개 허전하죠.”
-영어 실력은 많이 늘고 있는 중인가?
“(목소리가 확 바뀌어서 공손하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전에 영어로 인터뷰를 한 게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혹시 외워서 한 건가?
“아뇨. 아뇨. 그 자리에서 갑자기 이뤄져서 너무 당황했어요. 사실 제가 영어 공부를 학교에서 하지 못했어요. 학교를 다녔다 해도 보통 다른 학생들처럼 앉아서 제대로 공부한 게 아니어서. 문법이나 이런 것을 한국에서 많이 접하지 못하고. 어떻게 보면 미국 현지에서 원어민들과 대화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좀 ‘버벅버벅’하더라도 의사소통은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일단 뱉으니까. 그 분들도 제가 영어 잘 못하는 것을 알고 그래서 많이 알아주려고 애쓰고. 제가 원하는 거를, 원하는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딱 그 정도.”
◆ 윤이나의 골프를 더욱 강하게 하는 성장통
윤이나에게 언제가 가장 힘드냐고 물었다. 그러자 곧바로 “성적이 안 나왔을 때 힘들다”고 했다. 언제 자신에게 화가 나느냐고 묻자 이번에는 “항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이렇게 못 치지”라면서.
-자신의 올해의 키워드를 성장이라고 했는데, 올해 초 윤이나와 지금 윤이나의 다른 점은?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
“좀 저는 캐디에게 의존을 많이 했던 선수였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모든 시합을 캐디 삼촌이랑 함께 했고 제가 힘들 때 항상 캐디 삼촌이 옆에 있었으니까. 너무 고맙고 많이 믿고 또 캐디 삼촌이 주는 정보가 너무 정확해서. 많이 기대고 있더라고요, 제가. 그걸 (미국에) 나와서 많이 느끼게 됐는데, 초반에 그 영향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 스스로 골프를 풀어 나가는 데 부족함이 있으니까. 초반에 성적이 안 나고 이만큼 실수할 것을 좀 더 실수가 커지고. 그러면서 초반에는 좀 헤맸던 것 같아요. 여기저기 끌려 다니고. 지금은 점점 제 골프를 찾으면서 제 느낌에 집중하면서 제 느낌을 더 믿게 되는. 그러면서 스스로 나만의 골프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많은 팬들이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힘들어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힘든데, 힘들 때마다, 일단 좀 힘들면 시간이 좀 필요해요. 좋은 생각이 바로 나오지 않잖아요. 그럴 때 매니저 언니가 많이 도와주고. 그러다가 좀 다시 좋아지면 생각하죠. 올해가 전부가 아니고 올해 잘 적응해서 만약에 이걸로 몇 년, 10년 골프를 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다.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끊임없이 매 대회 뭔가 배우고 있어요.”
-많은 이들이 성장통 얘기를 하는데.
“성장통? 맞는 얘기인가 같아요.”
-어떤 부분이 아픈가?
“많이 아프죠. 좀 많이 아쉬워요. 일본 선수들도 그렇고, 올해 루키들이 굉장히 다 잘 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서 제가 좀 많이 힘을 못 쓰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럴 때 좀 속상하죠. 저에 대한 기대치라는 게 있었을 텐데. 그거에 한참 못 미치니까, 지금. 예선 탈락을 세 번 연속 할 때는 진짜 좀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기복이 심할 때가 있다. 1, 2라운드 때 마음과 3, 4라운드 마음가짐이 다른가?
“사실 완전 초반에는 그냥 막 잘 치기도 하고 못 치기도 하고 그랬잖아요. 전반기 중간쯤에는 정말 안됐어요. 그러고 나서 다우 챔피언십 때 성현 언니랑 같이 치면서 그때가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1, 2라운드 때는 뭔가 좀 맞아 나가는 느낌이 좀 들었었어요. 3, 4라운드 때는 그린이 조금 빨라진 건지, 코스 세팅도 조금 어려워지는 경향도 있고 여러 가지가 좀 섞여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자신의 골프가 너무 공격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나?
“하죠. 근데 많이 좀 안전한 공략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좀 변하긴 했어요. 미국 골프장은 실수의 허용 범위가 훨씬 작아요. 제가 미스 샷을 조금이라도 치면 그 공의 결과가 30㎝ 차이로 크게 벌어질 때도 있으니까요. 제가 너무 충격 받았던 건 어떤 곳은 랜딩 범위가 반경 2m 정도 그러니까 전부해야 4m인거에요, 허용 범위가. 근데 남은 거리는 120, 130m인데 결코 넓은 게 아니더라고요. 좀 더 공격적이고 수비적이고 보다는 내가 좀 더 송곳 같은 아이언을 가져야겠다는 걸 많이 느꼈죠.”
-그린을 놓쳤을 때 파를 잡는 능력의 필요성은?
“그것도 많이 느끼죠. 왜냐하면 한국 그린은 아무래도 큰 편이잖아요. 그래서 그린 미스를 거의 안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작년 그린적중률이 꽤 높은 편이었고. 어프로치 샷을 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까 그린도 조그맣고 조금만 실수하면 막 어려운 어프로치 상황이 생기고, 잔디도 다 다르고. 어프로치 샷을 너무 못 했구나. 근데 난 그 구멍을 모르고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힘들 때, 스트레스가 올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지?
“사실 제가 기대했던 것만큼, 그리고 많은 분들이 기대해 주신 것만큼 성적이 많이 안 나고 있는데, 제가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고. 그렇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올해가 전부가 아니고, 첫 해를 많은 아픔으로 시간을 보내면 그만큼 분명히 단단해 지고, 제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보면 마인드 컨트롤을 그런 식으로 했던 것 같아요. 의미 있는 시간이다. 분명히 없어지는 것 아니다. 그리고 제가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고. 아무리 해도 그 성적 스트레스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책을 읽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기타를 치면 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윤이나의 든든한 후원자 신지애와 박성현
윤이나는 다우 챔피언십 때 함께 팀을 이룬 박성현에게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신지애는 윤이나가 복귀할 때부터 많은 도움을 줬고 최근에도 윤이나의 연습을 도우면서 ‘키다리 언니’를 자처하고 있다. 윤이나는 신지애와 박성현에 대해 ‘선배’ 이상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존재라고 했다.
-다우 챔피언십 때 팀을 이룬 박성현에게 많은 걸 배웠다고 했는데.
“일단 경기를 준비하는 자세를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코스 매니지먼트를 위해서 전날 많이 살펴보고 나가더라고요. 경기 방식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리고 클럽 선택에 있어서 제가 좀 실수가 많았어요. 언니가 그런 걸 많이 잡아주셨는데.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이 클럽이 더 맞는 선택이었구나, 이런 걸 좀 느꼈어요. 사실 클럽 선택이 중요한 게, 정말 잘 친 샷이어도 조금 짧고 조금 길고 때문에 공의 결과가 크게 달라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부분이 언니가 가장 중요하게 얘기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제가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이기도 했어요.”
-홀로서기가 잘 되고 있는 것인지?
“그 계기가 다우 챔피언십이었던 것 같아요. 막판에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언니가 너무 잘 해서. 제가 많이 도움이 안 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요.”
-언니에게 밥 한 번 사야하는 것 아닌가?
“한 번으로 안 되죠. 그 것도 심지어 언니가 사 줬어요. 대개 따뜻한 사람이에요. 요즘 말로 ‘츤데레(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성격을 의미하는 일본어 신조어)’라고 하잖아요. 잘 챙겨주고.”
-신지애가 많이 도와주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지?
“작년에 전지훈련을 같이 해주셨잖아요. 저 초대해 줘서 같이 훈련하는 시간을 보냈는데. 언니는 제가 어떻게 공을 치는 줄을 알아요. 그래서 무척 오랜만에 저 공 치는 것을 본거거든요, AIG 위민스 오픈 때. 그리고는 ‘퍼팅 롤은 많이 좋아졌던데, 어떻게 치는 지 한 번 봐야겠다’ 하시면서 제 샷을 본거죠. 그러더니 ‘어휴, 팔에 힘이 많이 들어갔네’ 하시면서 힘 좀 빼라고 하시는 거예요. 발의 느낌도 좀 살리고. 이런 거 저런 거 얘기하면서 클럽에 대해 다양한 정보도 주시고. 제게 그냥 언니 존재 자체로도 안정감을 줬던 것 같아요. 간간히 팁도 주시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제 샷이 더 나아진 것 같더라고요.”
다음은 윤이나가 인터뷰를 끝내면서 했던 얘기다. 윤이나의 현재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대로 적는다.
“전에 이지영 강사라고 유명한 강사 있잖아요. 그 강사 분이 이야기하기로는 신이 선물을 줄 때 포장지를 싸서 주시는데, 큰 선물일수록 큰 포장지를 싸서 주신다고. 근데 그 포장지가 시련이라고 하더라고요. 내게 왜 이렇게 큰 아픔이 있지, 큰 시련을 주셨지 라고 생각이 들 때, 뭔가 이걸 뜯고 나가면 좀 더 큰 선물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라고.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말이 좀 저한테는 위로가 됐던 것 같아요.”
윤이나는 지금 그렇게 큰 시련을 지나가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큰 선물 포장지를 뜯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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