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청중은 현재 K팝 소비자의 90%를 차지하며 실제로 한국에 거주하는 팬은 10%에 불과합니다.”
블랙핑크 공연을 다룬 영국 ‘가디언’의 분석은 K팝의 주어가 이미 국경 밖에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시대의 ‘삶의 주권’은 문화에서 다시 정의돼야 한다. 주어(누가 창작하고 향유하는가)는 알파 세대, 목적어(무엇을 만들고 체험하는가)는 환상 현실이다. 동사는 무엇이든 좋다. 본다, 쓴다, 만든다, 소유한다.
알파는 스마트폰과 인공지능(AI)이 보편화된 환경에서 태어나 디지털로 살아가는 세대다. 애니메이션 아이돌과 현실 아이돌을 같은 현실감으로 소비하고 웹소설, 게임, K팝 공연을 동일 선상에서 기억한다. 이들의 세계에서 환상과 현실은 충돌하지 않고 융합돼 가치가 된다. 최근 화제가 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인기도 알파가 두 세계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 디지털 감각 위에 서 있다.
현장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달 열린 영국 에든버러 국제도서축제의 ‘디지털로 태어나다’ 세션에서 확인했 듯 한국 웹소설은 플랫폼 중심, 개방형 저작, 지연 편집, 작가·독자 유동성, 댓글 상호작용, 크로스미디어 확장의 여섯 축으로 진화했다. 한국은 거대한 해외 팬덤을 독자 풀로 연결하는 데 강점이 있다. 다만 다국어 전개는 과제다. 곧 영어권 주류 생태계로 편입될 것이며 스페인어·프랑스어권도 시간문제다. 누가 표준을 설계하는지가 관건이다.
따라서 K이니셔티브는 선언이 아니라 설계여야 한다. 먼저 웹소설을 공공 이야기 아카이브로 확장해야 한다. 새로운 플랫폼을 또 만들기보다 기존 플랫폼 위에서 시민 서사를 수용하고 AI 보정은 원본-가공 이중 기록과 진본성 라벨링으로 투명성 확보가 필수다. 아울러 계약 탬플릿과 2차 저작 가이드를 공개해 창작·거래·분쟁의 마찰을 낮추고 외국 창작자·에이전시가 쉽게 합류하도록 개방형 등록과 국제 표준 인증을 채택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
이제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서 그 기억을 ‘어떻게 보존·전시할 것인가’로 시선을 넓힐 때다. 기관별 역할은 분명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K팝을 현대예술사조로 선언하고 특별전을 기획해 해외 순회를 주도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K팝 역사와 팬덤 서사를 모은 ‘K팝 기억관’을 상설화한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전 세계 한류 팬덤의 이야기를 다문자 소통 프로젝트로 수집·전시한다. 해외 한국문화원과 대사관은 K이니셔티브의 글로벌 허브가 된다.
정부의 역할은 일회성 지원이 아니다. 플랫폼 중립 표준과 오픈 라이선스, 문화·교육·외교·산업을 잇는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맞물리게 해야 한다. K팝의 동력을 바탕으로 웹소설·웹툰–드라마–게임으로 이어지는 크로스미디어 지식재산권(IP)에 공공 데이터를 안전하게 접속시키면 한국 창작은 글로벌 시장에서 속도와 신뢰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앞으로 3년이 분수령이다. 내년에 웹소설 다국어 베타를 가동하고 2027년 개방형 표준을 공표하며 2028년에는 ‘K소프트파워 지수 2.0’을 발표해 보자. 소프트파워에서 한국은 국가 이미지를 보여주는 1.0 단계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만들고 쓰게’ 하는 개방형 생태계 2.0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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