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 하면 흔히 오페라 아리아나 독일 가곡을 먼저 떠올린다. 한국 가곡은 ‘가고파’ ‘봄처녀’ 등 소수의 옛곡만 알려져 있어 마치 박제된 과거의 음악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최근 신곡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한국어 가사와 한국적 감성을 전달하는 젊은 성악가들이 늘면서 ‘K가곡’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 흐름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소프라노 이해원(30·사진)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이해원은 “어렵지 않은 멜로디, 온전히 전달되는 한국어 가사, 그리고 편안한 발성 덕분에 한국 가곡을 좋아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며 “많은 분들이 저를 좋아해주시는 이유도 친근함과 편안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첫 음반 ‘흔들리는 꽃(2019)’은 김효근의 ‘첫사랑’ ‘내 영혼 바람되어’와 같은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작품뿐 아니라 서정주, 김소월, 도종환의 시에 현대 작곡가들이 곡을 붙인 노래들을 담아 주목을 받았다. 이어 2022년에는 ‘피어나는 꽃’ 앨범을 발표하며 한국 가곡 레퍼토리를 확장해왔다. 올해 6월 현충일 추념식에서 불러 깊은 울림을 준 ‘보고 싶은 얼굴’ 역시 그의 무대를 통해 재조명됐다. 청아하면서도 섬세한 표현력은 대중과 공감대를 넓히며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해원은 “좋은 곡들이 많이 쓰이고 있지만 정작 공연될 기회는 많지 않다”며 “제가 다리 역할을 해서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듣기 편안한 성악을 추구하는 이해원은 대중과의 접점도 적극 모색해왔다. 방탄소년단(BTS)의 ‘봄날’ 커버가 회자된 것도 그 일환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BTS의 곡들을 다양한 클래식 버전으로 커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원곡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많이 사랑받은 것 같습니다.”
이해원은 크로스오버 곡으로 대중에 알려졌지만 정통 성악의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 온 성악가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로시니 오페라 페스티벌의 ‘영아티스트 프로그램’에 합격하며 2021년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이해원은 “정통 클래식과 대중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균형 있게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다음 달 25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독창회 ‘더 보헤미안 걸’ 역시 여성 클래식 작곡가들의 가곡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클라라 슈만과 나디아 블랑제 등의 곡을 부른다. 조지훈의 시에 곡을 붙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정영주의 ‘고풍의상’이 초연돼 윤이상의 동명 작품과 비교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도 선사할 예정이다. 이해원은 “남성 위주의 클래식계에서 자신만의 색깔과 매력을 가진 여성 작곡가들이 많다”며 “좋은 작품이 많은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 같아 이번 무대를 통해 더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해원은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한국에 머물며 다양한 무대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박사 과정까지 마치며 학업과 연주를 병행할 계획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이해원에게는 무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특별한 ‘힐링’ 방법이 있다. 매주 보육원을 찾아 어린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봉사활동이다. 그는 “공연 내내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공허해질 때가 있다”며 “아이들과 함께하면 오히려 제가 치유되고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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