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강원 강릉시 강북공설운동장에는 이른 오전부터 붉은색 소방차 행렬이 이어졌다. 소방청이 전날 오후 ‘강릉시 가뭄에 따른 급수 지원을 위한 소방동원령’을 발령하자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차량이었다. 서울 12대, 경기 12대, 경기 북부 6대 등 물탱크차 50대와 경북에서 온 급배수 지원차 1대 등 총 51대의 차량은 강릉시 일대의 상수도 소화전, 취수장 등에서 지정된 급수 장소 및 홍제정수장을 오가며 시민에게 공급하기 위한 물을 실어 날랐다. 소방청 관계자는 “주민들이 생활용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위기 상황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는 조치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강릉 일대에 전례 없는 ‘극한 가뭄’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자 정부가 30일 해당 지역을 가뭄으로 인한 ‘재난사태’ 지역으로 선포했다. 자연재해로 재난사태 지역을 선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강릉 지역 강수량은 404.2㎜로 평년(983.7㎜)의 41% 수준이다. 여름 강수량은 더 심각하다. 6~8월 총 187.9㎜가 내렸는데 1911년 기상 관측 개시 이래 1917년 여름(187.4㎜)에 이어 108년 만에 가장 적은 수치다. 올여름은 장마가 일찍 끝난 데다 태풍 등의 변수도 없어 강수량이 더 줄었다.
강릉 생활용수의 약 87%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는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다. 31일 저수율은 14.9%로 평년(70.7%)의 5분의 1 수준이다. 강릉단오보존회는 23일 기우제까지 열며 애타게 비가 오기를 기도했지만 현재로서는 9월에도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는 없다.
주민 불편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20일부터 수도 계량기 밸브를 조절해 공급량을 줄이는 50% 제한 급수가 시행됐는데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15% 밑으로 내려가면서 제한 급수율은 75%로 높아졌다. 식당·카페마다 설거지용 물을 아끼려 일회용 컵을 쓰고 상당수 공중화장실도 문을 닫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씻는 것조차 어렵다” “하루하루가 고역”이라는 주민들의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최악의 가뭄은 가을 축제와 행사마저 멈춰 세웠다. 강릉시는 1일 열기로 했던 ‘시 승격 70주년 강릉시민의 날 기념행사’를 잠정 연기했다. 31일 개최 예정이었던 ‘제14회 강릉시 주민자치센터 우수프로그램 경연대회’도 개최를 미뤘다. 개강을 맞이한 일대 대학들도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개강을 맞은 대학들의 축제도 일정 조정이 불가피한 상태다.
계속되는 극한 가뭄에 강릉시의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강릉시가 가뭄 대응 비상 대책을 발표한 것은 19일로 이미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20%에 다다른 시점이었다. 강릉시는 용수 확보를 위해 오봉저수지 상류 도마천 일대에서 물길 터주기 공사를 벌이고 급수차를 동원해 홍제정수장으로 물을 옮기는 등의 작업을 진행했지만 고온이 지속되는 현재로서는 유입량보다 마르는 양이 더 많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속초시와 비교하며 강릉시의 대책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속초는 과거 70일 넘게 제한 급수를 할 정도로 대표적인 물 부족 도시였다. 주요 식수원인 쌍천의 경사가 급해 물을 가둘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속초시는 지표면 아래 암반 위에 총 63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지하댐 2개를 연달아 건설해 물 부족을 극복했고 상수도 관로 정비 등을 통해 새는 물도 잡았다. 그 결과 올해는 ‘워터밤 속초’ 같은 행사도 안정적으로 열 수 있게 됐다.
강릉시도 지하댐 건설을 추진 중이나 2027년에나 완공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2001년 방류가 중단된 평창군 도암댐 물을 다시 끌어오자는 의견도 나온다. 정재훈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2019년 도암댐 발전 재개를 통한 원수 공급을 추진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무산됐다”며 “당시 프로젝트가 추진됐다면 지금과 같은 가뭄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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