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정말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고통의 역사를 딛고 일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튼튼한 세계를 구축해왔죠. 한국이 가진 문화적 자긍심, 세계와 소통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열망을 보면서 저는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철 조각가 앤터니 곰리(75)는 29일 서울 중구 주한영국대사관 대사 관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북방의 천사(Angel of the North)’ 등으로 세계의 도시 풍경을 다시 쓴 현대미술계의 거장 중 한 명이다. 그런 그에게 최근 한국은 특별한 의미가 됐다. 올해만 벌써 두 번째 한국을 찾았을 정도로 전시와 프로젝트가 집중되면서 자연스레 인연이 깊어졌다.
강원도 뮤지엄산에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함께 상설 전시 공간 ‘그라운드’를 6월에 열었고 ‘드로잉 온 스페이스’라는 대규모 개인전도 진행 중이다.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는 38개 큐브 구조물로 휴식 중인 인간의 몸을 형상화하는 초대형 조각 프로젝트 ‘엘리멘털’도 작업하고 있다. 그는 “내 일생 최대 규모가 될지도 모르는 신안 프로젝트가 어쩌면 한국의 특별함을 말해주는 사례일 것”이라며 “같은 재료로 철도나 도로 같은 기능적 오브제를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신안군은 미래를 상상하는 오브제를 제작하기로 했다. 이것은 아주 특별한 감각”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내한은 서울 코엑스에서 9월 3일부터 시작하는 글로벌 미술 축제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 기간에 열리는 서울 첫 개인전 ‘불가분적 관계(Inextricable)’를 위해 이뤄졌다. 글로벌 메가 갤러리인 화이트큐브와 타데우스 로팍이 공동으로 한 명의 작가를 집중 조명한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는 이번 전시는 인체와 공간의 관계를 탐색하는 작가 곰리가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해석을 곁들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는 “인류는 언제나 쉼터를 필요로 했고 그 욕구에 따라 마을과 건축, 도시 역시 계속 진화해왔다”며 “서울이라는 공간 역시 한국전쟁이라는 내전의 폐허를 넘어 새로운 풍경을 구축해가고 있는데 이런 특별한 맥락을 가진 공간 안에서 정치적이면서도 시적인 표현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갤러리의 실내 공간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생활하는 길에서부터 출발했다”며 “점점 더 많은 인류가 점유하고 있는 도시라는 환경(공간)과 그 한복판에 선 예술의 위치를 환기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곰리를 대표하는 인체 형태의 철 조각 ‘몸틀기’ 등 일부 작품은 전시장 안이 아닌 바깥, 도산대로의 보행로 한복판에 놓였다. 또 다른 작품은 빌딩 한 구석에 덩그러니 자리했고 때로는 전시장 벽 기둥 뒤로 숨기도 했다. 곰리는 “조각이란 우리를 멈추게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이끄는 촉매 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며 “지나가는 행인들이 조각을 보며 이 세계에서 조각과 나의 위치가 적절한지, 어디가 우리의 자리인지 등을 한 번쯤 생각해본다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도 참석했다. 또 국내 주요 박물관장과 기업인,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곰리의 첫 서울 개인전을 기념하고 한·영 양국의 문화예술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는 자리도 가졌다. 크룩스 대사는 “한국은 아시아의 떠오르는 예술 허브”라며 “이번 전시가 양국 문화 교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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