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는 한국인들도 즐겨 찾는 관광 명소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샌프란시스코는 장인환·전명운 의사가 친일 외교 고문인 더럼 스티븐스를 저격한 곳일 뿐 아니라 안창호 선생, 서재필 선생 등 내로라하는 애국 지사들이 활동했던 장소다. 1903년 상항 친목회를 시작으로 1905년 공립협회, 1907년 대동보국회, 1910년 대한인국민회, 1913년 흥사단 등 미주 지역 주요 독립운동 단체가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20세기 초반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우리 선조들은 일자리를 찾아 중가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중가주의 작은 농촌 마을 리들리·디누바가 미주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이곳에 정착한 한인들은 농장 노동 수입의 상당 부분을 애국 성금으로 바쳐 국내외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디누바에서 창단된 대한여자애국단은 3·1운동 1주년 만세 행진을 주도하는 등 민족의식 제고와 애국심 고취에 기여했고 ‘백미대왕’으로 불린 김종림은 독립군 공군 창설을 목표로 한인 비행사 양성소를 설립·운영하기도 했다.
리들리·디누바 지역의 공동 묘역에는 현재 190명이 넘는 애국 선열들이 영면하고 있다. 머나먼 이역만리 땅에서 조국 독립을 애타게 염원하던 우리 선조들은 고단한 가운데 한시도 조국을 잊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것이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온전한 자유와 행복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북가주·중가주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들이 개최됐다. 구한말 미국으로 건너와 대동보국회를 창립해 한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에 헌신했던 문양목 지사의 유해 봉송 추모제가 열렸다. 문 지사는 조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꿈에 그리던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 영면에 들어갔다. 한인 단체들의 주도 하에 광복절 경축 행사도 성대하게 개최됐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서는 202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하비어 베세라 전 연방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현지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독립운동사에서 샌프란시스코의 기여를 되돌아보고 광복의 의미와 기쁨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공연 팀들이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임으로써 한인들에게는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현지인들에게는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맘껏 즐길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해외 독립운동 유산에 대한 우리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북가주와 중가주 곳곳에 애국 선열들의 발자취와 독립운동 역사가 산재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잊혀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의 책무는 분명하다. 남겨진 선열들의 발자취를 보존하고 그 정신을 후대에 올곧게 전하는 것이다. 역사적 현장 보존과 기념비 건립, 디지털 아카이브화, 청소년 교육 등의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 미주 독립운동사 연구와 자료 발굴에 대한 지원과 함께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예우와 지원 강화도 절실하다. 광복 80주년을 계기로 ‘일상 속 살아있는 보훈, 모두의 보훈’이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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