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내년도 예산안과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내년 총지출은 올해 본예산 대비 8.1%, 2025~2029년 총지출은 연평균 5.5% 늘릴 계획을 밝힘으로써 4년 만에 최대치의 확장 재정 기조를 분명히 했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이 1%에 못 미치고 잠재성장률도 하락하는 상황에서 경기 회복과 신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확장 재정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목표 달성을 위해 예산이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배분되었는지, 재정의 지속가능성 등 중장기적 고려 사항이 충실히 반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먼저 연구개발(R&D)에 대한 역대 최대 예산 편성이 성과를 거두려면 국가 R&D의 고질적인 비효율성을 타파하고 기초 연구와 응용 연구 간 불균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는 세계 2위지만 성과는 8위에 그쳐 투자에 비해 성과가 낮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예산을 대폭 증액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산학 연계 강화, 국제 교류 확대, 인재 확보 등 R&D 성과를 끌어올릴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 중심의 응용 연구에 편중된 R&D 투자의 불균형을 개선해 대학 중심의 기초 연구 투자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세계적 석학인 필리프 아기옹 교수는 ‘창조적 파괴의 힘’이란 저서에서 혁신은 여러 단계를 통해 이뤄지며 혁신을 위해서는 기업 중심의 응용 연구 못지 않게 대학 중심의 기초 연구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2023년 연구개발활동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기업의 연구개발비 비중(79.2%)은 높고 대학의 비중(9.1%)은 낮다. 이번 예산안 역시 단기간에 상용화가 가능한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가 강조돼 이런 불균형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R&D의 또 다른 축인 고등교육 예산이 내년에 5.4% 증가에 그치고 그마저도 지역 균형 발전과 주로 연계돼 대학 중심의 기초 연구 역량 강화를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 내수 소비 진작 목적의 일자리 사업과 지역사랑상품권 사업은 보완이 필요하다. 내년 예산안에는 직업 훈련, 고용 서비스, 각종 지원금 등 일자리 분야 예산이 5.6% 증가했지만 일자리 창출의 주체인 기업의 수요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기업이 고용을 늘릴 규제 혁신·세제 혜택 등의 정책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지역사랑상품권 사업 역시 조정이 필요하다. 24조 원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위한 중앙정부 예산은 1조 2000억 원에 그쳐 대부분의 재정 부담은 지방 정부가 지게 된다. 지역사랑상품권은 발행·유통에 비용이 발생하는 데다 경기 활성화 효과가 미미하고 학원과 병·의원 등 특정 업종만 혜택을 본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지역사랑상품권에 얽매이지 않고 지방 정부가 지역 실정에 맞는 정책을 통해 소비를 진작하도록 하는 것이 낫다.
마지막으로 이번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크게 퇴보했다는 것이다. 이번 계획에는 재정 준칙 법제화에 대한 논의가 사라졌으며 2025~2029년 정부의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4% 이상으로 지난 정부 재정 준칙 한도인 3%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재정 적자의 누적은 적자 국채 발행으로 이어져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2029년에는 58%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우리와 비슷한 조건의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올 4월 국제통화기금(IMF) 재정점검보고서에 따르면 2029년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중앙·지방정부의 회계·기금 부채+ 비영리공공기관 부채)은 선진국 중 11개 비기축통화국 평균보다 높고, 올해부터 2029년까지의 평균 증가율은 체코에 이어 2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경우 정부 부채의 급증이 불러올 국가신인도 하락과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 약화 등을 고려한다면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산은 규모가 아니라 효율이 중요하다. 확장 재정은 미래 세대의 짐이 아니라 투자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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