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구 관세청장이 이르면 올 11월 로드니 스콧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장과 만나 통관 애로를 전담할 협력 채널 구축 방안을 논의한다. 예정대로 한미 관세청장회의가 개최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0주년을 계기로 열렸던 2022년 8월 이후 약 3년 3개월 만이다. 이 청장은 미국의 상호·품목관세 부과 조치에도 “한미 FTA는 없어진 게 아니라 여전히 유효하다”며 “우리 기업의 부담은 줄이고 부(富)는 늘리는 방향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청장은 2일 대전정부청사에서 취임 50일을 맞아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첫 인터뷰에서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과 제18차 한미 관세청장회의 개최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미(對美) 고율 관세가 국내 경제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미국을 시작으로 일본·중국 등 주요국과 릴레이 관세청장회의를 갖고 국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달 22~24일에는 인도·태국·인도네시아·브라질·베트남 등 10개국의 관세 당국 고위직을 한국에 초청해 무역 원활화 정책 포럼도 연다.
이 청장은 “하루빨리 스콧 청장을 만나 한미 FTA와 수출입안전관리 우수업체(AEO) 상호인정약정(MRA)의 틀 아래에서 수출기업들이 기존처럼 원활하게 통관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AEO MRA제도는 상대국이 공인한 우수 수출입 기업에 대해 자국에서도 그 지위를 인정하고 세관 검사 축소 등 통관 절차상 혜택을 제공하는 관세 당국 간 약정이다. 현재 한국은 미국과 일본·중국 등 20개국과 AEO MRA가 발효돼 있다. 스콧 청장이 자신의 인사청문회 기간 ‘원산지와 품목 분류 부분들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겠다’고 밝힌 사실이 한국에 전해지면서 국내 수출기업들은 통관 지연 등을 우려해왔는데 카운터파트너인 이 청장이 이를 불식하겠다고 직접 나선 것이다.
이번 한미 관세청장회의 안건에는 대미 우회 수출 차단 협력과 마약 합동 단속 등 공조 체계 강화 방안 등도 포함된다. 이 청장은 “마약 단속과 관련한 정보 교류 및 중국산의 우회 수출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은 택갈이, 서류 위조와 같이 의도적으로 원산지를 조작하거나 ‘실질적 변형’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 우회 수출로 판단해 4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한 상태다.
이 청장은 “정상적인 한국산 제품들을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들이 오해받는 일들이 없도록 하겠다”며 “우리 기업의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불법 우회 수출을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단속을 강화한 결과 관세청은 올해 1~8월 1799억 원 규모의 국산 둔갑 우회 수출을 적발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12% 증가한 액수다.
관세청은 국내시장을 잠식하기 위해 덤핑 방지 관세를 교묘하게 회피하려는 시도에도 단호히 대처할 방침이다. 이 청장은 “우회 덤핑과 관련한 법적 제도는 올해 1월 도입했다”며 “이번 세제 개편을 통해 내년부터는 제3국이나 우리나라 보세 구역에 들여와 경미하게 제품을 바꾸는 일도 조사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중국 등에 반입이 불가능한 고성능 인공지능(AI) 칩 등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차단에도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한 컨트롤타워인 무역안보특별조사단은 이르면 내년부터 임시 조직에서 상설 기구로 전환된다. 이 청장은 “특조단장의 직급을 격상하는 등 체계화시켜 더 많은 성과를 내도록 독려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최근 무역 범죄가 단순 밀수, 관세 포탈 수준을 넘어 자본시장 교란, 보조금 편취 등 경제 범죄와 결합해 규모와 방식이 복잡해지고 있다”며 “사기·횡령·배임 등 경제 범죄까지 수사권이 확대된다면 무역 범죄 전 과정을 완결성 있게 수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관세청은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에 보탬이 되도록 어려운 글로벌 교역 여건에도 세수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이 청장은 “관세청 소관 세수는 연간 약 72조 원으로 총국세 예산의 약 20%를 차지하지만 대외 경제 변수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2조 원(올해 7월 기준) 규모의 체납액 정리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 청장은 끝으로 ‘AI로 공정 성장을 선도하는 관세청’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관세청은 15일 서울본부세관에서 이런 내용의 신(新)비전을 선포할 계획이다. 연장선상에서 이달 중 빅데이터팀을 AI혁신팀으로 전환하고 다음 달 무역·외환 이상거래 모니터링 시스템도 정식 개통한다. 이 청장은 “민간 분야에서 무역 데이터를 활용해 혁신적인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