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을 비롯한 10여 명의 국가 지도자들이 1일부터 이틀에 걸쳐 중국 고속철도를 타고 베이징역에 도착했다. 중국 톈진에서 폐막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총회에 참석했던 정상들이다. SCO 정상회의를 주재하며 ‘반서방 연대’ 메시지를 담은 ‘톈진 선언’을 끌어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틀 뒤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26명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 중국의 군사력과 국제적 영향력을 과시하고 반미 세력을 결집하는 데 이만한 무대가 없다. 5만 인파와 최첨단 무기를 총동원할 수 있는 ‘홈그라운드’이기에 가능한 전략적 외교다.
자국 안에서 양자·다자 외교 활동을 펴는 ‘홈그라운드 외교’는 강대국의 전유물이다. 약소국은 외국 정상들을 초청하기도 어렵고 대규모 외교 행사를 치를 역량도 부족하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홈그라운드 외교, 중국 표현으로는 ‘주창(主場)외교’에 나선 것은 시 주석이 권력을 잡은 2012년 제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이후이다. 2013년 말 왕이 당시 외교부장이 처음 공론화한 데 이어 2014년 3월 양회(兩會)에서는 주창외교가 중국 외교의 주요 특징으로 규정됐다. 그 뒤로 보아오포럼, 일대일로 정상포럼 등 중국이 주최하는 국제회의를 브랜드로 육성하고 다양한 외교 행사를 중국으로 끌어들였다. 글로벌 의제를 주도하고 국력을 과시하면서 글로벌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최근 수년간은 시 주석의 해외 순방도 부쩍 줄었다. 고령 탓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 조연 노릇을 하기보다 자신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안방을 무대 삼아 ‘맹주’ 역할을 하겠다는 노림수가 강해 보인다.
10월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재명 대통령의 첫 ‘홈그라운드 외교’ 무대다. 자국에 들어앉은 시 주석의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 우리 정부의 외교 역량이 시험대에 올라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