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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이나

대주주 양도세 논란, 연말정산 재정산 데자뷔

용산·여의도 사이에 끼여 눈치만 보는 기재부

일관성 없는 조세부담원칙, 누더기 세법 필연

이제라도 빠른 결단으로 시장 신뢰 회복해야

김정곤 논설위원




‘하루 만에…없던 일로.’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2월 23일, 기획재정부가 “공무원연금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군인연금과 사학연금 개편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후 나온 서울경제신문의 보도 제목이다. 전일 발표된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 적시한 정책을 불과 하루 만에 손바닥 뒤집듯이 없던 일로 바꾼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기재부는 “관계부처와 충분한 협의 없이 내용이 포함됐다”고 해명했으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직역연금 개혁은 국민연금 개혁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에 이미 포함됐던 핵심 과제였다. 게다가 기재부가 사전 브리핑에서 2015년까지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구체적인 시한을 못 박았던 탓이다.

과연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언론 보도 이후 군인과 교사들이 강력 반발하고, 이에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다음 해 4월 재보궐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불만을 터트리자 전격 철회했다는 게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의 증언이다.

10년도 더 지난 기재부의 정책 뒤집기를 떠올린 것은 현재 진행 중인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강화 논란 때문이다. 기재부는 ‘세수 정상화’와 ‘조세 형평성’을 내세워 상장 주식의 대주주 양도세 과세 기준을 현재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정책 구상에 역행한다는 투자자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기재부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대주주들이 양도세 회피 목적으로 연말을 앞두고 보유 지분을 대량 매도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실제 관련 세법 개정안이 발표된 다음 날 코스피는 3.88%, 코스닥은 4.03%나 폭락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뜨겁게 달아오르던 증시는 차갑게 식어버렸고 이후 한 달 이상 약세를 보이고 있다.

세금은 부동산과 함께 여론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슈다. 그 어떤 정책보다 신중하게 추진됐어야 했다. 이번 세법 개정안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충분한 여론과 시장 현실이 반영됐는지 의문이다. 투자자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정부 여당 내부에서 이견이 표출된 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기재부는 여전히 눈치를 보며 명확한 입장 발표를 미루고 있다. 그동안 대통령실과 여당에서 서로 다른 발언이 인용 보도되며 시장의 혼선만 커지고 있다.

기재부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로는 ‘2015년 연말정산 재정산’ 사태를 꼽을 만하다. 이 역시 조세 형평성을 맞추겠다는 명분 아래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세법 개정안이 사달이 났던 사례다. “증세는 없다”던 박근혜 정부의 말을 믿었는데 연말정산을 해보니 중산층의 세금 납부액이 크게 늘어났고 반발이 커지자 결국 소급 입법과 일부 환급이라는 전례 없는 졸속 처방이 나왔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기재부의 정책 실패, 이번에는 어떤 결론으로 막을 내릴까.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망치를 들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며 도구 편향의 한계를 지적했다. 익숙한 도구나 방법만 떠올리고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로 의존적 사고방식을 지적하는 말이다. 기재부는 세수 확보라는 기계적 관성에 갇혀 정작 경제의 큰 그림, 시장의 흐름을 놓쳤다. 정책은 원칙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목표가 정당해도 시장과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 시장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주주 양도세 기준 변경과 관련해 “잘 판단해서 늦지 않은 시기에 발표하겠다”고 했다.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이다. 특히 투자심리를 거스르는 조세정책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결론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연말정산 재정산 파동, 정책 뒤집기 논란의 전철을 밟지 않는 길이다.

일관성 없는 조세 부담 원칙과 기계적 정책 설계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누더기 세법과 예측 불가능한 시장 혼란으로 귀결될 뿐이다. 이제라도 기재부는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정무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잘못된 정책을 정리하는 결단만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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