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미국 고용시장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신호가 잇따르고 있다. 고용시장 둔화세가 확연해지는 가운데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내 금리를 3차례에 걸쳐 75bp(bp=0.01%포인트) 내릴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5일(현지 시간) 미 노동부가 발표한 8월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비농업 부문 고용은 2만 2000명 증가한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7월 7만 9000명보다 5만 7000명이나 줄었으며 전망치(7만 5000명)에도 크게 못 미쳤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고용 통계 수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용통계국 전임 국장을 해임하고 보수 싱크탱크 출신 인사를 앉혔지만 고용시장은 더욱 둔화하고 있다. 이날 실업률도 4.3%로 7월 4.2%에서 상승했다.
최근 미국 고용시장 둔화세는 심화하는 양상이다. 전날 노동부는 지난주(8월 24~30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23만 7000건으로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그 직전 주(22만 9000건)와 블룸버그 전망치(23만 건)를 모두 웃도는 수준이다. 또 고용 정보 업체 ADP도 민간 고용 보고서를 내고 8월 신규 취업자 수가 5만 4000명 증가에 그쳐 시장 예상치(7만 5000명)를 크게 밑돌았다고 발표했다. 이는 7월(10만 4000명)보다도 저조한 성적표다. 앞서 공개된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서도 7월 구인 건수가 지난해 9월(710만 3000건)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적은 718만 1000건으로 집계됐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올 1~7월 미국에서 이민 노동자 수는 120만 명이나 감소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 단속으로 인해 노동력 증가는 상당히 둔화됐고 노동 참여율은 소폭 하락했다”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잭슨홀(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 연설이 현실 지표로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은 9월 기준금리가 25bp 인하될 확률을 99%로 반영했다. 이달 16~17일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의 금리 인하 가능성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셈이다. 더 나아가 올해 말까지 연준이 금리를 75bp 내릴 확률도 3일 43.1%에서 이날 54.3%로 높여 잡았다. 이 기간 연준이 50bp 내릴 확률은 40.9%로 나타났다. 연말까지 FOMC 회의가 9월 16~17일, 10월 28~29일, 12월 9~10일 등 세 차례 남은 점을 감안하면 ‘빅컷(0.5%포인트 금리 인하)’이 없다는 가정 아래 연준이 회의 때마다 금리를 내릴 가능성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연준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점도 금리 인하 전망에 힘을 싣는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는 최근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를 받는 리사 쿡 연준 이사에 대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아드리아나 쿠글러 전 이사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지명된 스티븐 마이런은 이날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이 연준 이사가 되더라도 현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직을 겸직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밝혔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파월 의장의 후임을 조기에 찾기 위해 5일부터 11명의 후보자에 대한 면접을 시작한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금리 인하 전망은 미국 국채 가격을 높이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재정 악화 등의 이유로 장기 국채 매도 흐름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미국 국채 가격의 하락 폭은 상대적으로 적거나 오히려 오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2심 법원에서 위법으로 판단받은 영향으로 한때 5% 선을 넘어섰던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도 이틀 연속 하락하면서 금리 인하 기대를 반영했다. 실제로 올 들어 이날까지 독일(14.4%)과 프랑스(8.0%) 등의 10년물 국채금리가 치솟은 데 비해 미국은 8.7% 낮아져 대비를 이뤘다. 같은 기간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40% 이상 치솟기도 했다. 1980년대 ‘채권 자경단’이라는 용어를 만든 에드 야르데니 야르데니리서치 대표는 “시장이 미국 국채에 여전히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신호”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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