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영국 등 주요 국가의 국고채 금리가 최근 장기물을 중심으로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나 홀로 안정세를 나타내며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펀더멘털이나 재정 상태가 양호해서가 아니라 보험사들이 건전성 지표를 유지하기 위해 초장기채를 매입하면서 금리 상승(가격 인하)을 막고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보험사들이 일정 기간 이후 자본 건전성 규제를 만족하면 우리 국고채 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7일 서울 채권시장에 따르면 주요국과 달리 최근 우리나라 초장기 국채금리는 큰 오름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5일 기준 국채 30년물 금리는 2.78%로 연초 2.70%와 비교하면 상승 폭이 0.08%포인트에 그친다. 영국 30년물 국채금리가 5일 5.52%를 기록해 연초 대비 0.35%포인트, 일본은 같은 기간 0.93%포인트 오른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 30년물 금리는 연초와 비교하면 큰 차이는 없지만 최근 장중 심리적 마지노선인 5%대를 터치하는 등 급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요 선진국의 장기채 금리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정부 지출 증가에 따른 재정적자 우려와 이를 충당하기 위한 추가 국채 발행 부담 전망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내년 예산안이 전년보다 8% 늘어난 728조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됐고 확장 재정 기조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내년 50%를 넘어설 것으로 보여 재정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보험사들의 장기채 수요가 금리 상승을 제한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보험사는 주로 장기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장기물에 주로 투자해 자산·부채 간 듀레이션(가중평균 만기)을 관리한다. 특히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K-ICS·킥스) 하락을 막기 위해 초장기채를 매입할 수밖에 없다. 현재와 같은 금리 하락기에 부채(보험 상품) 듀레이션이 자산(보유 채권) 듀레이션보다 길면 자산보다 부채가 증가해 킥스 비율도 하락한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만기가 긴 장기 국채를 더 사들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험사들은 올 1월 국고채 30년물을 2조 4482억 원 순매수한 이래 8월까지 매달 1조 5000억 원 이상을 꾸준히 사들이고 있다.
채권시장에서 외국인들의 동향이 바뀌고 있는 점도 장기채 금리 안정의 이유로 거론된다. 채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고채 금리 방향성은 외국인들이 정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2024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들의 수요는 국고채 금리 추세에 선행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그러나 지난해를 기점으로 외국인 수요와 국고채 금리 추세는 동행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오히려 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 중심의 초장기물 수요로 국채금리 상승이 제한되고 이러한 흐름을 파악한 외국인들이 투매 물량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보험사 수요가 뒷받침되는 한 당분간 국채 시장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주요 선진국의 초장기물 약세 흐름을 한국이 그대로 따라갈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며 “국내는 보험사 수요가 여전히 탄탄해 연말을 넘어선 시점까지도 매수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보험사 수요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확장재정 기조가 이어질 경우 재정적자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제3차 장기재정전망(2025~2065년)’을 통해 최악의 경우 2065년에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173%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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