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청론직설] “‘AI 3강’ 가려면 데이터 장벽 허물고 재생에너지 집착 버려야”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前정부 ‘소버린 AI’ 방향 설정 못해 경쟁 골든타임 놓쳐

민간 투자 부진·인재 유출에 ‘원재료’ 데이터도 태부족

李정부 전략은 개인정보 보호·전력 대책 등서 아쉬움

규제 위주 AI법 유예하고 데이터정책 패러다임 바꿔야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가 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I 3강’ 도약을 위한 데이터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권욱 기자




전 세계가 기술 무한 경쟁에 돌입하면서 국가의 기술적 우위가 국제정치의 패권을 좌우하는 ‘기정학(技政學)’의 시대가 열렸다. 미래 생존의 열쇠를 쥔 것은 기술·산업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인공지능(AI)이다. AI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술 패권국에 국민 생활 전반과 국가 안보까지 의존하는 AI 주권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AI 3대 강국’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AI 드라이브에 속도를 내는 이유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AI 학습의 원재료인 데이터는 엄격한 개인정보 처리와 저작권 문제에 가로막혀 턱없이 부족하고 전력 등 핵심 인프라 대책도 명확하지 않다. 최근 초대 한국정보통신법학회장으로 취임한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데이터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개인정보·저작권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AI시대에는 기업이 기술적으로 정보 유출을 사전 예방하고 국가가 심사·점검을 맡아 적극 개입하는 방식으로 개인정보 보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AI기본법에 대해서는 “산업이 육성되기도 전에 위험성에 대한 규제에 중점을 뒀다”면서 “시행을 유예하고 법을 개정하거나 최소 1년 이상 기업이 준비할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AI 경쟁에서 한국의 위치를 어떻게 보는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센터에 따르면 AI 분야의 선두권은 미국·중국이고 한국은 독일·영국·프랑스·인도·캐나다보다 뒤처진 9위 수준이다. 유럽·캐나다 등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어 3위 그룹으로 볼 수 있겠지만 경쟁력 있는 자체 AI모델의 부재와 생성형 AI 분야에서의 기술 격차, 민간 투자 부진, AI 인력 부족으로 미국·중국과 격차가 상당하다. 중상위 그룹의 경쟁국들을 제치고 확실한 3위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일 것이다.

-‘AI 3대 강국’을 목표로 내건 이재명 정부의 AI 전략을 어떻게 평가하나.

△전반적으로 빠짐없이 모든 내용을 나열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우선 AI 데이터 규제에 관해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 AI 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원재료인 데이터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수인데도 개인정보 보호와 충돌되는 이슈라서 그런지 뚜렷한 방침을 제시하지 못한 것 같다. 전력 확보 등 인프라 구축에 관한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전력 수요 폭증에 대응하려면 소형모듈원전(SMR) 등 원자력발전 활성화가 불가피한데 정책적 불명확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재생에너지에 집착하지 말고 적극적인 원전 활용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할 때다. 인재 확보와 민간의 과감한 투자를 이끌어낼 구체적인 방안도 필요하다.

-정부의 AI 정책 화두인 ‘소버린 AI’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일각에서는 뒤늦게 독자 모델을 개발하기보다 앞선 글로벌 모델을 응용하는 편이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독립적인 AI 구축은 ‘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의 영역이 아니라 ‘해야 한다’는 당위론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역량도 충분하다고 본다. 한국은 미국·중국을 제외하면 모델·데이터·클라우드·반도체 등 소버린 AI 개발을 위한 역량 요소를 모두 갖춘 유일한 나라다. 소버린 AI 없이는 외국 빅테크들이 국내 데이터를 모두 가져가도 속수무책이고 기술 종속도 피하기 어렵다. 가치 창출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소버린 AI를 갖추면 데이터 보안에 유리한 것은 물론이고 해외 빅테크에 대한 협상력도 갖출 수 있게 된다. 독도 영유권 분쟁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과 관련해 우리 가치관을 반영하는 데도 유리할 것이다.

-AI 역량이 이미 크게 앞서 있는 미국이나 중국과 경쟁이 가능하겠나.

△사실 챗GPT 등은 인류의 지적 재산을 거의 다 학습한 상태다. 우리가 지금부터 소버린 AI를 개발해서 그만큼의 데이터를 학습·소화하고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묻는다면 한계가 있는 것이 맞다. 그래서 소버린 AI와 외국 모델 응용의 투트랙 전략을 펼 필요가 있다. 기초 모델을 보유하면서 의료·법률 등 특화 AI에 집중해 틈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전략을 펴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미국이나 중국의 영향력을 꺼리며 ‘제3의 길’을 가는 동남아시아나 중동 국가들을 파고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정보기술(IT) 강국이던 한국이 AI 분야에서 확실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AI 경쟁은 ‘쩐의 전쟁’이다. 재원 부족으로 규모에서 밀린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게다가 AI 경쟁 초창기였던 지난 정부 시절에 국가AI위원회는 소버린 AI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어정쩡한 정책을 냈다. 방향 설정을 못한 채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자체 기술 개발에 뛰어들기보다는 외국산을 활용해 쉽게 가려고 한 것 같다. 투자가 부진하니 인재도 빠져나갔다. 마지막으로 개인정보 보호 위주의 정책 때문에 AI 원재료인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치열한 글로벌 AI 인재 유치전에서 인력 유출을 막을 방법이 있나.

△우수 인력을 확보하려면 파격적인 처우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우리 기업들은 비용 부담과 형평성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기업들의 AI 도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 전환(AX)을 위해서는 기존 인력 삭감이 뒤따를 텐데 노조와의 갈등 때문에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에는 AI가 인력을 대체하는 만큼 첨단 분야에서 새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기대했지만 일자리 창출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더딘 것이 현실이다. 우선 재교육 등을 서둘러야겠지만 결국에는 고용 시장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

-데이터 부족을 해소할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기업이 보유한 방대한 데이터를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기업이 보유한 원본 데이터를 동의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특례 조항을 두고 공개된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 개인정보·저작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본·싱가포르·영국처럼 AI가 기계적으로 긁어오는 데이터에 대해서는 저작권 침해 책임을 묻지 않는 텍스트데이터마이닝(TDM) 면책 조항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개인정보와 데이터에 대해 자율 규제와 사후 규제 방식으로 전환하고 사전 규제는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개인정보 보호 관련 법 제도를 바꿔야 하나.

△AI가 활용하는 데이터에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으면 AI 사업자는 AI기본법상의 규제와 함께 개인정보 보호 규제도 같이 준수해야 하는데 두 법상 유사한 내용의 충돌, 중복 소지가 있다. AI 규제는 AI로 인한 위험이 개인정보 처리를 넘어서는 영역에 대해서만 보완적 평가를 실시하도록 하고 개인정보보호법상 제도들은 AI시대에 맞게 확대·고도화해서 효과적인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

-AI 시대를 맞아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우려는 더 커졌는데.

△AI 기술 발전이 가속화하면서 개인정보 침해로 인한 피해도 심각해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처럼 ‘사전 동의’에 기반한 개인정보 보호 제도의 효용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생성·결합되는 상황에서 이용자에게 일일이 사전 동의를 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이다. 형식적인 동의가 실질적 정보 보호 기능은 못하고 외려 기업들에 면죄부만 줄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정부가 기업의 개인정보 처리 방침의 적법성·적정성을 심사하고 실태 점검까지 맡아 안전성과 신뢰성을 보장하는 데이터보호 국가 책임제를 검토해볼 수 있다. 기업은 서비스나 기술 개발의 초기 단계부터 개인정보 보호를 시스템 설계에 내재화해 사전 예방 차원에서 접근하고 데이터 암호화·난독화를 통한 프라이버시 강화 기술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이제 개인정보 보호의 패러다임을 기술적 사전 예방과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한 실질적 보호라는 두 축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내년에 AI 기본법이 시행되는데 법제도 측면에서 보완점을 제시한다면.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 없이 법이 너무 빨리 졸속으로 통과됐다. 그러다보니 산업 진흥이 아닌 규제에 중점을 둔 법이 나왔다. 산업이 제대로 육성되기도 전에 위험성에 대한 규제부터 하는 너무 앞선 법이 돼 버렸다. 이를 하위 법령이나 시행령 등으로 보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가 ‘과태료 부과’는 유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지만 일단 ‘위법’ 딱지가 붙으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규제 완화에 중점을 둔 ‘AI 액션플랜’을 발표하고 유럽연합(EU)에서도 AI 규제 거버넌스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AI기본법의 규제 관련 조항들을 그대로 시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어느 나라에서도 시행되지 않는 AI 기술에 대한 포괄적 규제를 한국이 앞장서서 할 필요는 없다. 합리적인 법 개정을 위해 일단 시행을 유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어이 시행해야 한다면 적어도 1년 이상은 기업들이 준비할 기간을 줘야 한다.

이성엽 고려대 교수가 8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규제 중심의 AI기본법은 유예·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권욱 기자


◇He is…

1967년 대구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에서 행정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법학 석사, 서울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정보통신부·국무조정실 등에서 근무했고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2017년부터 고려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 미래성장연구원 AX 전략포럼위원장, 데이터·AI법 센터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한국데이터·AI법정책학회 명예회장이기도 하다. 올 6월 발족된 한국정보통신법학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