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의 국회 통과 이후 기업들이 우려했던 노조의 경영 간섭 시도가 현실화하면서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9일 서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기아 노동조합은 올해 임금 교섭에서 별도 요구안 중 하나로 ‘미래 자동차 산업 관련 국내 공장 전개’를 제시했다. 로봇·수소차·미래항공교통 등 신사업 제품을 국내 생산하도록 노사 협약에 포함시키라는 것이다. 기아 노조의 요구가 관철되면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260억 달러(약 36조 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이날 공포돼 내년 3월 10일부터 시행되는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넓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노조나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불법 파업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노동쟁의 대상을 ‘근로조건의 결정’에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 결정’으로 확대해 기업의 대규모 투자나 미래 사업 계획에 노조가 개입할 여지를 크게 넓혀준 측면도 있다. 해외투자 등 경영진의 전략적 판단에 노조가 고용 불안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파업을 벌이면 기업이 현실적으로 이를 저지할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수백 개의 협력 업체와 연결된 자동차·조선·철강 업계는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다. 하청 기업 근로자 비율이 원청의 최대 5배에 달하는 국내 중소 조선사들은 하청 노조의 임금 인상 압박으로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에 더 밀리게 될 수 있어 생사의 기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기업들의 우려가 지나치다며 연일 경제인들을 만나 설득하고 있지만 현장의 혼란과 갈등은 되레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현대차·한국GM·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조선 등 자동차·조선 업계는 잇따라 파업에 나섰다. 금융노조도 이달 말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노란봉투법이 정부의 주장대로 ‘상생의 법’으로 자리매김하려면 기업 성장과 노동 존중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무엇보다 노란봉투법의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을 시급히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당장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한 투자나 구조조정 등 경영 판단은 쟁의 대상에서 제외해달라는 경제계의 요구부터 들어줘야 한다. 대체근로 허용 등 선진국에서 보장하는 사용자 방어권 입법화에도 보다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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