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 맞는 2025년 정기 국정감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글로벌 관세 전쟁의 여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제 겨우 봉합 국면에 접어든 의정 갈등,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에 더해 장기 불황으로 인한 민생경제의 위기와 저성장 늪에서 벗어날 해법을 찾는 게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국정감사는 이러한 현안을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할 제도적 장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민의 기대는 또다시 실망으로 돌아올 것이다. 특히 여야의 위치가 바뀐 새 구도에서 맞붙는 올해 국감은 정치적 이해득실에 휘둘리며 정쟁의 무대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과거 국감의 풍경은 국민들에게 늘 실망을 줬다. 많은 의원들이 국정감사를 정책 검증의 장이 아니라 정치적 무대로 여긴다. 언론의 헤드라인을 차지하기 위해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질문을 쏟아내지만 정책 논의는 부족하다. 국민의 눈길을 끌기 위해 의원들이 매년 경쟁적으로 늘려온 것이 증인과 참고인 숫자다.
청문회와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증인은 크게 두 부류다. 부처와 공공기관의 장과 관계자 같은 기관 증인, 그리고 국정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반 증인이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피감기관을 제외한 일반증인이 510명 소환됐는데 이 가운데 기업인만 159명에 달했다. 그러나 기업인들의 소환 사유를 보면 국정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기업 경영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정감사가 ‘국정 감사’가 아니라 ‘기업 성토용 민간 감사’로 불리는 이유다. 과거에는 재벌 총수들이 단골로 불려 나왔지만 최근에는 대기업 임원이나 중견기업 대표들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정치 상황에 따라 기업 증인 숫자가 급격히 늘거나 줄기도 한다. 올해도 기업인 소환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그것이 과연 정책 검증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숫자만 늘어난다고 국감이 충실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각 상임위에 주어진 기간은 20일 남짓, 의원 1인당 질의 시간은 보충 질의를 포함해도 7~10분에 불과하다. 수십 명의 증인을 놓고 심층 검증을 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결과는 뻔하다. 2021년 국감에서 일반 증인이 발언한 평균 시간은 3분 41초였고 아예 발언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단답으로 끝난 경우도 많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의원들의 질문은 평균 27.7단어였던 반면 증인 들의 답변은 11.7단어에 불과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맹탕 국감’, ‘수박 겉핥기 국감’, ‘갑질 국감’이다.
현업에 바쁜 기업인들을 왜 굳이 불러세워 몇 마디만 하고 돌려보내야 하는지 늘 의문이 든다. 준비되지 않은 질의와 의례적 답변이 오갈 뿐인 자리에 불필요한 증인을 세우는 것은 낭비이자 모욕이다. 국회가 의회의 기능을 다하려면 증인 선정과 소환 절차를 손질하고 질의·답변 과정을 내실화해야 한다. 그래야 국감이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제도로 남을 수 있다.
이번 국감이 고함과 말다툼만 난무한 채 아무 성과 없이 지나갔던 과거 국감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국가적으로 안팎으로 위태로운 이 상황에서 여야 모두 정쟁에 명운을 걸기보다 국가와 국민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길을 찾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국감을 ‘정치 공방’이 아니라 ‘정책 검증’의 장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국회의 책임이다.
근본적 제도 개선도 시급하다. 국정감사는 1987년 헌법 개정으로 부활한 뒤 30여 년간 정권과 다수당이 수차례 바뀌었음에도 운영 방식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국정감사도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정쟁의 무대로만 소비된다면 국민은 더 이상 국정감사의 존재 이유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국감은 대의 민주주의 국가라면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문제는 그것이 형식적 행사로 전락하느냐, 아니면 품격 있고 내실 있는 정책 검증의 장으로 거듭나느냐이다. 국민은 후자를 절실히 원한다. 여야는 소모적 정쟁을 거두고 국정감사가 국가 발전과 국민 삶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본연의 기능을 되찾아야 한다. 그것이 국회가 국민에게 져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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