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절대 강자인 SK하이닉스(000660)가 ‘포스트 HBM’ 시장 선점을 위해 네이버클라우드와 손을 맞잡았다. 차세대 인공지능(AI) 메모리 솔루션을 상용화하기 위해 양사가 실증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네이버클라우드와 AI 솔루션 제품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협력은 SK하이닉스의 차세대 AI 메모리 솔루션인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프로세싱인메모리(PIM)를 네이버클라우드의 실제 데이터센터에서 검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SK하이닉스는 네이버클라우드에서 CXL과 PIM을 최적화할 계획이다. CXL은 컴퓨터의 두뇌(CPU·GPU)와 저장 장치인 메모리 사이를 기존 4차선에서 8차선·16차선 이상으로 대폭 늘리는 최첨단 기술이다. CPU와 GPU가 필요할 때마다 넓은 데이터 도로를 통해 서로의 메모리 자원을 빌려 쓸 수 있어 데이터 처리 효율을 극대화한다.
PIM은 데이터를 저장하는 ‘창고(메모리)’에 연산 기능을 내장한 ‘똑똑한 메모리’다. 과거에는 CPU나 GPU가 메모리에서 일일이 데이터를 가져와 처리했지만, PIM은 메모리 안에서 직접 데이터를 가공해 CPU나 GPU로 보내는 방식이다. 데이터 이동 거리를 획기적으로 줄여 AI 연산 속도를 높이고 전력 소모는 크게 낮출 수 있다.
차세대 메모리 시장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SK하이닉스가 실제 서비스 기업과의 협력으로 실용성 검증에 초점을 맞춘 반면 경쟁사인 삼성전자(005930)는 기술 생태계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HBM에 PIM 기술을 결합한 HBM-PIM을 개발해 AMD의 AI 가속기에서 성능을 인정받았고 레드햇 등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과 손잡고 CXL 관련 기술 표준을 주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양사가 각기 다른 전략으로 미래 시장을 공략하면서 기술 표준을 둘러싼 양사의 주도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실증 작업을 거친 후 글로벌 빅테크의 문을 두드릴 계획이다.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글로벌 데이터센터 운영사(하이퍼스케일러)를 상대로 SK하이닉스는 차세대 AI 메모리 솔루션 수주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빅테크는 전 세계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의 가장 큰 고객이면서 한번 공급사로 선정되면 장기간 대규모 계약을 맺어 안정적 매출을 보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기술 검증 과정은 극도로 까다롭고 길기로 유명하다.
SK하이닉스는 네이버클라우드와의 협력을 통해 험난한 검증 과정의 예비시험을 치르는 셈이다. 성공적인 데이터를 확보한다면 글로벌 빅테크의 문을 두드릴 때 가장 강력한 ‘추천서’를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안현 SK하이닉스 개발총괄 사장은 “실제 상용 환경에서 엄격한 검증을 거쳐 글로벌 AI 생태계가 요구하는 최고 수준의 메모리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며 “이번 협력을 시작으로 글로벌 CSP 고객들과의 기술 파트너십도 적극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이사는 “AI 서비스 경쟁력은 소프트웨어를 넘어 데이터센터 인프라 전반의 최적화에서 결정된다”면서 “글로벌 AI 메모리 대표 기업과의 협업으로 인프라부터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그룹 계열사와의 협력도 고민했지만 실증 데이터를 쌓기에는 네이버클라우드 만한 파트너가 없었다는 후문이다. SK그룹 내에서 클라우드 사업을 하는 SK AX(옛 SK C&C)는 자체 인프라를 운영하는 CSP이기보다 고객사의 클라우드 전환과 운영을 돕는 MSP(클라우드 관리 서비스 제공사)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SK텔레콤이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 중이지만, 현재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고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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