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엔비디아의 중국향 인공지능(AI) 가속기에 탑재되는 7세대 그래픽 D램(GDDR7) 공급을 확대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주춤했던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 확실한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은 시장의 예상보다 빠르게 HBM4(6세대)를 개발해 경쟁사와 비슷한 시기에 엔비디아와 공급계약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삼성전자에 중국에 수출할 AI 가속기 B40에 탑재되는 GDDR7 D램의 공급 확대를 요청했다. 라인 정비를 마치는 대로 삼성전자는 이르면 이달 중 증산에 나설 계획이다. B40의 연간 출하량은 애초 100만 대로 예상됐는데 3분기 들어 중국 내 수요가 급증하며 증산 요청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B40은 엔비디아의 최신 블랙웰 AI 가속기를 기반으로 한 경량화 제품이다. HBM 대신 GDDR7으로 메모리를 변경해 미국 수출 규제와 비용 효율성을 동시에 충족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다음 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에 동행하는 것도 엔비디아 AI 가속기의 중국 수출 확대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GDDR7 공급 확대는 삼성전자와 엔비디아가 돈독한 신뢰 관계를 형성했음을 시사한다. 삼성은 이르면 이달 하순 SK하이닉스(000660)·마이크론 등과 비슷한 시기에 HBM4 커스터머샘플(CS)을 엔비디아에 제공할 예정이다. 경쟁사 대비 3개월가량 떨어진 제품 개발 일정을 따라잡은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발열 등의 이슈로 갈등을 빚던 전 세대와 달리 HBM4에서는 삼성과 엔비디아가 우호적 분위기 속에 협업 중”이라고 전했다.
엔비디아 신뢰 되찾은 삼성 HBM4 역전 드라마 쓴다
中 B40용 독점 공급해
압도적 양산 능력 입증
이달말 HBM4 CS 공급
‘메모리 왕좌’ 탈환 시동
엔비디아가 삼성전자에 7세대 그래픽 D램(GDDR7) 공급 확대를 요청한 것은 부품 공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양사 간 신뢰 관계가 철통 같이 강력해졌음을 시사한 것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4 적시 공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에 힘이 실린다.
삼성전자는 HBM3(4세대)와 HBM3E(5세대)에서 경쟁사 대비 높은 발열 문제 등으로 엔비디아 공급이 지연돼 왔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모두 엔비디아의 현재 주력 인공지능(AI) 가속기인 블랙웰에 HBM3E를 공급하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나홀로 ‘품질 검증(퀄 테스트)’을 여태 통과하지 못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러나 이번 GDDR7 공급 확대로 기존 메모리 1등 업체로서 삼성전자의 압도적 양산 능력이 재평가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기세를 몰아 사실상 최종 납품 전 단계인 HBM4 커스터머 샘플(CS)을 경쟁사와 동일한 시기인 이달 말 엔비디아에 공급할 전망이다.
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중국 내에서 엔비디아의 B40은 올 들어 이미 100만 대를 초과해 공급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애초 예상됐던 B40 수요 100만 대를 넘어섰지만 2배까지 늘지는 않았다”고 평했다. 앞서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모건스탠리는 5월 올 해 B40 출하량을 100만 대로 예상했다.
B40에 공급하는 GDDR7은 삼성전자가 단독 납품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3사 중 가장 높은 GDDR7 경쟁력을 갖춘데다, 양산 능력에서도 앞선있다. 경쟁사들이 기존에 계약된 HBM3E 생산에 집중하며 삼성전자에 기회가 돌아갔다는 분석도 있다.
B40의 연간 출하량이 100만 대를 넘게 되면 삼성전자의 메모리 부문 매출은 최대 9000억 원 가까이 증가할 전망이다. B40 한 대에 96기가바이트(GB)의 GDDR7이 탑재되는 점을 고려하면, 연간 필요한 메모리 총량은 9600만 기가바이트(GB)에 달한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GDDR7 1GB당 평균 판매단가(ASP) 5~7달러를 적용 시, B40 하나만으로 삼성전자가 올릴 수 있는 연간 매출은 최소 4억 8000만 달러(약 6500억 원)에서 최대 6억 7200만 달러(약 900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GDDR7의 영업이익률은 20~30%로 알려졌다. 예상 영업이익은 9600만 달러(약 1300억 원)에서 최대 2억 달러(약 2700억 원)로 추정된다.
이번 GDDR7 공급은 삼성전자에게 매출 증대 이상의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HBM 시장에서 엔비디아와 협력 관계 구축에 어려움을 겪었던 삼성전자는 가장 자신 있는 분야에서 압도적 기술력과 양산 능력을 입증하며 신뢰 회복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번 협력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에 탑재될 HBM4 시장 적시 진입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 2분기 출하량 기준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은 17%로 SK하이닉스(62%)의 3분의 1 수준이다. 엔비디아 AI 가속기의 중국 수출이 제한되며 삼성전자 HBM 판매에 타격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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