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문화 예산을 많이 늘렸잖아요. 어디다, 구체적으로 제대로 쓸 지를 지금부터 연구를 하셔야 됩니다.”(이재명 대통령) “많이 늘려주셔서 감사히 느끼고 있지만, 정부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01%포인트 늘었습니다. 전체 비중 대비해서는 아직도 여전히 부족합니다.”(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그러니까, 맞는 지적이신데. 어디에 어떤 사업이 효율적인 데 다른 데 쓰는 것보다 여기 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증명되면 안 쓸 리가 없잖아요. 그걸 만드는 게 지금 장관님의 일인 것 같아요. 그런 고민을 많이 해주세요. 그런데 손이 많이 가죠, 분야가 워낙 넓고 다양해서.”(이 대통령) “그래도 해내겠습니다.”(최 장관) “그러시라고 맡긴 거니까. 잘 해주시고요.”(이 대통령)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문화재정을 둘러싸고 진행된 이재명 대통령과 최휘영 대통령의 위 문답이 관심을 끈다. 내년도 책정된 ‘문화재정’(정부안)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과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다소 다른 시각이 눈에 띈다. 문화재정을 많이 배려했으니 ‘잘 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최 장관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 대화는 이날 최 장관이 문체부의 인바운드 관광 활성화 업무보고를 한 이후 이뤄졌다.
이번 문답에 포함된 의미를 해설하면 대략 이렇다. 우선 “이번에 문화 예산을 많이 늘렸잖아요”라는 이 대통령의 말은 내년도 문화재정이 올해 대비 대폭 증가한 것을 의미한다. 문화재정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국가유산청·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까지도 포함된 문화·예술·관광·체육·국가유산(문화재) 등의 예산을 모두 포함한 이름이다. 최근 정부 예산안 발표에서 정리된 내년도 문화재정은 9조 5600억 원으로 올해 본예산 대비 8.8%(7712억 원)이나 증가했다. 내년 정부 총지출(728조 원)이 올해 대비 8.1% 늘어난 것보다 더 높은 상승률이다. 이 대통령이 많이 배려해 줬다고 자신 있어 할만하다. 이 대통령은 앞서 대통령 선거 공약에서 ‘국가예산 대비 문화재정 대폭 확대’를 제시하는 등 수차례 예산 증액을 언급해 왔다.
하지만 최휘영 장관의 느낌은 달랐던 셈이다. “정부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01%포인트 늘었습니다. 전체 비중 대비해서는 아직도 여전히 부족합니다”라는 말은 정부 총지출 대비 문화재정 비중이 여전히 작은 규모라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내년 정부 총지출 728조 원 대비 문화재정(9조 5600억 원)의 비중은 1.313%이었다. 이는 올해(1.305%) 대비 달랑 0.008%포인트 늘어난 데 불과하다. (문화재정 가운데 문체부의 내년 예산 비중은 1.07%로, 올해 1.05%보다 0.02%포인트 증가했다.)
그동안 문화재정은 금액 자체는 늘어났지만 상승률이 소폭에 그치면서 급격히 늘어났던 정부 총지출 대비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떨어졌다. 문화재정 비중은 2000년 처음으로 1%로 돌파했고 점점 증가하면서 2016년 1.72%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계속 하락했는데 2024년 1.33%, 2025년에는 1.305%였다. 많이 늘어났다는 2026년도 문화재정도 ‘비중’에서는 2024년에 못 미치는 셈이다. 일반적인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지난 10년 동안 실질 문화 예산은 계속 줄어든 셈이다.
최근 10년간 사실상 내년 처음으로 유효적으로 문화재정이 증가했다는 생각에 최 장관이 “아직도 여전히 부족합니다”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해석된다. 최휘영 장관은 지난 4일 취임 한 달여 만의 첫 언론간담회에서 “(내년 예산안의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조정도 있겠지만 증액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어 그는 “현재 문화재정 비중은 OECD 국가 가운데 중하위권”이라며 “장기적으로 (정부 총지출 대비) 2%까지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었다.
이 대통령의 다음 언급인 “다른 데 쓰는 것보다 여기 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증명해야 한다”는 것은 전반적인 비(非)문화계 인사의 ‘문화’에 대한 시각을 반영한다는 것이 문화계의 시각이다. 즉 문화라는 것이 당연히,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돈을 버는, 경제성장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분야는 아니라는 인식이다. 문화 ‘산업’이 아니라 결국 ‘놀고 먹는’ 분야 아니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문화계는 많은 반론을 내놓은 바 있다. 예를 들면 문체부는 지난 3월에 공개한 중장기 문화비전 ‘문화한국 2035’에서 “최근 콘텐츠 산업 성장률은 5~6%로, 1~2%대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높고 예술·스포츠·여가 분야 고용유발계수(10억원당)는 14.5로 제조업 7.6, 건설업 10.8보다 월등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생산성 통계 수치가 그렇다는 것이지 일반인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는 사실이다. 문체부와 문화계가 더욱 치밀하게 증명하고 설득시켜야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동안 문화계 인사들은 “정부나 여야를 막론하고 평소에는 항상 문화가 중요하다고,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예산 배분 문제에 맞닥뜨리면 목소리가 작아지더라. 이해는 할 수 있다. 우리 정치 현실에서 당장 결과가 안 나오는 문화에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그러시라고 맡긴 거니까, 잘 해 달라”는 말은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핸 그의 고심을 보여준다. 어쨌든 ‘글로벌 소프트파워 5대 문화강국 실현’을 이재명 정부의 목표로 내걸었고 결과는 멀지 않아 나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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