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시대 점토판에 기재된 ‘쿠심’의 대출 기록부터 21세기 암호화폐까지, 인류 5000여 년의 역사에서 전개된 ‘돈의 향연’이 펼쳐진다. 돈은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기도 하다. 돈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데 돈은 또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 왔을까.
신간 ‘머니: 인류의 역사(원제 Money: A Story of Humanity)’는 돈 또는 화폐가 당시 국가나 사회가 당면한 경제적·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공적 도구이자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작가이자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칼리지 겸임교수인 저자는 기존의 딱딱한 경제학 책에서 벗어난 돈의 스토리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인류 최초로 문자로 기록된 사람의 이름은 ‘쿠심’이라는 농민으로 그가 33%의 고리대로 농사 자금을 빌릴 것을 증거한 내용이라는 것부터 독자의 흥미를 끈다. 왕이나 사제, 장군들이 아니라 소농의 대출이 최초의 기록이라는 것은 돈이 인류의 역사에 끼친 중요성을 방증한다는 설명이다.
‘팍스 로마나’는 로마의 기축통화 유지가 핵심이었고 이것이 무너지면서 중세 ‘암흑시대’로 추락했다. 이후 인도인들이 발견한 ‘0’의 개념이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이른바 ‘신대륙’에서 금·은을 가져와 한때 유럽 강국으로 도약한 스페인과 포르투갈, 금융업을 토대로 세계 패권에 도전한 강소국 네덜란드, 화폐 제도의 부실이 촉발한 프랑스혁명,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벌인 착취를 통해 부를 쌓았던 벨기에 등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 위조 지폐를 대량 살포해 영국을 무너뜨리려 했던 히틀러의 계략 등이 이어진다.
최근 장안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암호화폐에 대해 “사적으로 만들어낸 디지털 위조 지폐에 다름 아니다”는 저자의 주장도 이채롭다. 유럽 중심적인 전개로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 관련 내용이 없는 것은 아쉽다. 2만 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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