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동차 관세 협상 난항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현대차(005380)가 향후 5년간 77조 3000억 원의 대규모 투자로 위기 극복에 나선다. 지속적으로 친환경차 라인업을 확대하고 미국과 인도, 울산에 생산 기지를 확장하기 위해서다. 현대차는 관세와 관계없이 2030년 자동차 판매 555만 대 달성을 이뤄내며 글로벌 자동차 그룹 상위 3위의 위상을 공고히 하겠다는 목표다.
2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현대차의 영업이익 추정치는 지난해 14조 2396억 원 보다 9.95% 감소한 12조 8233억 원이다. 매출액 추정치는 184조 8822억 원으로 지난해 175조 2312억 원 대비 5.51% 증가했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서 위상은 여전하지만 통상 환경 악화로 이익 창출력이 감소했다. 당장 올 2분기 실적만 하더라도 매출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7.3% 늘었지만 같은 기간 매출 총이익은 6.4% 줄었다.
현대차 역시 위기를 인정했다. 현대차는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25 현대차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올 초 발표했던 연결 부문 영업이익률 목표를 기존 7~8% 대비 1%포인트 하향한 6~7%로 설정했다.
위기에 봉착했지만 현대차는 움츠러들기보다 정면 돌파를 택했다. 그간 쌓아온 탄탄한 재무를 기반으로 대규모 중장기 투자에 나서며 관세 불확실성을 이겨내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는 내년부터 하이브리드(HEV)·현지 전략 전기차(EV)·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등 친환경 전동차 기반 신차를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특히 전기차 수요 정체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하이브리드 차량 라인업을 중형·대형·럭셔리 부문에서 18개 이상 확대하며 수요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아울러 현재 40% 수준의 미국 생산 현지화율을 2030년까지 80%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면 관세 폭탄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수익성 전망치 하향 원인은 판매가 아닌 관세 영향이 크기 때문에 현지화 비중 확대는 수익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판매 대수 확대를 위한 생산 기지 확충에도 속도를 낸다. 올 4분기 완공 예정인 인도 푸네 공장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다. 내년 1분기 완공 예정인 울산 신공장은 연간 20만 대의 전기차 양산을 목표로 조립 설비 자동화, 로보틱스 기술, 인공지능(AI) 기반 품질 검사 등이 조화를 이루며 12종의 자동차를 유연하게 생산하는 첨단 제조 현장으로 구축한다.
비상 경영 상황이지만 신사업 투자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현대차그룹은 현지 생산 확대와 로보틱스 생태계 구축 등을 위해 올해부터 4년간 미국에 260억 달러(약 36조 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올 3월 발표했던 210억 달러에서 50억 달러를 늘렸다.
투자 확대에도 재무 면에서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신용평가사는 최근 현대차가 처한 시장 환경이 불리하긴 하나 탄탄한 재무 안정성을 바탕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진단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올 6월 말 기준 현대차의 부채 비율은 63.8%로 도요타(54.6%)와 유사한 수준이며 GM(180.4%), 폭스바겐(114.5%)에 비해선 절반 이하다. 현대차와 기아를 합산한 순현금 자산(현금-차입금)은 30조 원이 넘어 실탄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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